"연기란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기는 작업이 아닐까? 마음을 채우고 다시 비우는 무한의 과정 속에서 관객들에게 주름진 시간을 펼쳐 보이는 운명을 받아들인 자, 나는 배우라 말하고 싶다. 최진실은 배우다. 짧은 비극적 인생을 살았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다와 다를 바가 없다.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수한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들은 굵직한 선을 그리며 한국방송사에 있어서 커다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273쪽)

배우 고(故)최진실(1968~2008)의 삶과 예술세계를 정리한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이 출간됐다. 이 책은 영화평론가 심우일 , 문화평론가 최강민, 문화 칼럼니스트 김혜연, 영화평론가 김필남 등 10명이 공동집필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세상을 갑작스럽게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최진실의 죽음을 슬퍼했고 팬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최진실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녀가 한국대중문화에 남긴 유산은 적지 않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및 광고를 남겼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높은 시청률과 흥행을 기록했다.

10명의 필자들은 최대한 자신의 관점과 개성을 유지하면서 최진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 문화평론가 최강민은 최진실의 성공신화, 버려짐의 트라우마, 자살, 버터플라이 효과, 최진실 죽음의 의미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최강민은 최진실의 자살이 25억 사채설과 동료들의 외면, 이혼 후 우울증, 적자생존의 연예인 스트레스와 팬들의 외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간접적인 죽음의 체험 등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느 순간 증폭되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봤다. 여러가지 자살 원인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를 '버려짐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진단했다.

문화 칼럼니스트 김혜연은 신데렐라 신화의 시작이었던 최진실의 CF 광고를 분석했다.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CF 광고로 무명의 모델에서 최고의 신데렐라 스타로 등극했다. 책에서 김혜연은 "소비가 행복이었던 시대, 여자는 신나게 물건을 사들이고 남자는 웃으면서 결제해주는 모습이 행복의 아이콘이었던 시대, 최진실은 그 한가운데에서 빛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제2부는 영화배우로서 활약했던 최진실의 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 최진실이 출연한 첫번째 개봉 영화는 '남부군'이었다. 그 후 그녀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고스트 맘마' '편지' 등에서 주목할 만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국민배우가 됐다.

영화평론가 김필남, 지승학, 송효정, 박우성은 최진실이 출연한 초기작부터 마지막에 출연했던 영화까지 소재와 이미지로 나눠 분석했다.

영화평론가 김필남은 최진실이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이기도 했으며, 아내도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당대의 아이콘이었다고 말한다. 송효정은 최진실 이미지는 기성세대에게는 가난을 딛고 성공한 '또순이'의 서민친화적인 이미지로, 젊은 세대에게는 상품경제의 첨단에 있는 감미로운 이미지로 어필됐다고 분석했다.

제3부는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논했다. 최진실은 1992년에 출연한 드라마 '질투'를 통해 최고의 청춘스타가 됐고 1997년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드라마 칼럼니스트 송치혁은 최진실이 출연한 초기 드라마인 '질투' '아스팔트 사나이' '째즈'를 중심으로 최진실 신드롬을 진단한다. 최진실은 귀엽고 똑소리나는 신세대 청춘에서,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에 이르는 이미지를 통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송치혁은 최진실 신드롬이 삶을 직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용기 있게 추구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드라마 평론가 김태희는 최진실의 중기 드라마인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추억' '장미와 콩나물'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김태희는 대중들이 이 시기에 최진실의 드라마를 보며 시집간 우리 언니(혹은 딸 같은 피붙이)를 보는 심정으로 최진실을 응원했다고 본다. 당대 대중들은 각박한 현실이 지속될수록 최진실이 행복하기를 바랐고, 최진실이 드라마에서 지켜낸 가정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드라마 칼럼니스트 최영희는 최진실의 후기 드라마인 '장밋빛 인생' '나쁜 여자 착한 여자'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분석한다. 최영희는 이 작품들이 최진실의 연기 인생에서 절정기에 도달했다고 평한다. 최진실이 귀여운 여인의 이미지를 버리고 오직 연기 그 자체에만 집중해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완벽하게 변신했다고 평한다.

영화평론가 심우일은 머리말에서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주는 무게감을 견뎌내며 그녀의 삶과 작품세게를 정리하는 작업은 그 자체가 생각의 우연을 실천의 필연으로 만드는 과정에 다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쩌면 우리는 최진실을 매개로 '자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최진실이라는 실재(實在)를 어떻게 언어로 붙들어둘 수 있겠는가. 다만 그녀를 통해 망각하고 있었던 우리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이 책이 배우이자 탤런트로 활동했던 최진실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312쪽, 1만5000원, 문화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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