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쓸 때 남들이 다 자는 밤에 깨어나 원고지를 든다. 여편네도, 자식도 나와는 무관하다.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는 백지이다. 빈 칸을 향해서 만년필을 든다."(1권·209쪽)

소설가 고(故) 최인호(1945~2013)가 생전에 구상한 문학적 자서전 '나는 나를 기억한다(1·2권)'가 2주기(9월25일)를 앞두고 출간됐다.

연세대 영문과 출신의 그는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하며 등단했다. 입선 당시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어서, 1962년 고교 3학년생으로 등단한 황석영(72)과 함께 특별한 이력의 작가로 꼽힌다.

고인은 1970년대부터 소설과 영화로 청년문화의 장을 열었다. 100여 편에 이르는 소설 가운데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깊고 푸른 밤' '황진이' 등 30여 편이 영화로 제작돼 한국영화의 흥행문화를 선도했다.

역사소설 '상도'와 '해신'은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1975년부터 2010년 초까지는 35년간 월간 샘터에 소설 '가족'을 최장기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2008년 5월 침샘암이 발병, 수술을 받은 후 5년 간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병원 치료를 받던 중 68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침샘암 진단을 받기 전인 2008년, 자신의 회고록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생전에 최씨 작품을 출간해 온 출판사 여백은 "7년 전 작가가 이 책을 구상했다"며 "고인의 뜻을 받들어 2주기에 맞춰 추모집으로 완성했다. 오스트리아 지휘자 카를 뵘이 쓴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나는 나를 기억한다'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여름부터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학시절에 쓴 글들과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며 "육필원고를 보관 중인 부인 황정숙씨의 도움을 받아 글을 정리했다"고 덧붙였다.

책은 1권 '시간이 품은 나의 기억들'과 2권 '시간이 품은 나의 습작들' 총 2권으로 구성됐다.

그는 투병 중에도 2011년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2012년 반세기 문학인생을 정리한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펴내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008년 침샘암이 발병해 집필을 중단하기까지 쓴 글을 1권으로 묶었다.

고인의 유년과 청년 시절을 기록한 일종의 문학적 자서전이다. 6. 25 피난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린 10대 시절, 하루에 한 편씩 소설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던 청년시절, 연애이야기, 신춘문예로 등단해 무서운 신인으로 주목 받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권은 최인호 문학의 세계관과 감수성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문학사적 자료다. 작가의 50년 전 습작 노트에 담긴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등단하기 전까지를 아우르는 미발표 원고들이 담겨 있다. 1권 284쪽·2권 280쪽, 각권 1만3800원.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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