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를 며칠 앞둔 성폭행 피의자가 동종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는다. 자칫 미제로 남을뻔 했던 이 사건은 유전자(DNA) 대조를 통해 14년 만에 다시 진행되게 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 경)는 14일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성폭력 범죄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이모(41)씨를 상대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씨는 지난 2001년 3월5일 오전 7시40분께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A(25·여)씨의 집에 침입해 자고 있던 이씨의 눈과 입을 천으로 가리고 스타킹으로 피해자의 손을 묶은 뒤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은 성폭행범의 DNA를 확보했지만 범인을 검거하는데는 실패했다. 용의선상에 있던 인물들과 일치하는 DNA를 가진 남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2010년부터 DNA 신원확인정보의 보호법 시행으로 수감자들의 DNA를 채취하면서 올해 초 이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사건은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지난 4월 서둘러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당시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수감 중인 상태였다.

이씨는 2003년 8월과 12월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각각 징역 7년, 5년을 선고받고, 12년간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검찰이 이씨를 기소한 시점은 출소 날이었다. 지난 2007년 공소시효가 연장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DNA가 확보될 경우 최장 10년까지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 증거로 등장한 DNA는 피의자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사건 기록이 사라지면서 검찰은 이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졌다. DNA 결과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변호인 측도 이번 재판에서 이러한 점을 적극 피력하고 있다. 이씨는 "피해자를 알지도 못하고, 범행 장소에 간 사실조차 없다. 수사기관에서 제출한 유전자감정 결과는 믿을 수가 없다"며 "수사기관, 교도관이 나를 억울하게 처벌하려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 재판에서도 배심원과 판사에게 "(동종전과가 있지만)선입견 없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선처를 구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실마리로 등장한 DNA 감정 결과가 재판에서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DNA는 99.99% 일치해 지문보다도 정확하다"며 "증거부족으로 사건이 뒤집힐 일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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