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범(청전) <사계>
40여년 전 1970년대 미술시장은 한국화의 '불꽃같은 전성기'였다. 특히 '6대가 열풍'은 지금의 '단색화 바람' 못지 않았다.

영원한 건 없다. 40년 후 한국화는 힘을 못쓰고 있다. 권세가들 집안에 한점씩은 걸려있던 '6대가'는 이름 석자도 희미해졌다. 작품값도 '×값'이 됐다. 서양화를 그리는 신진작가 가격보다 낮기도 하다. 심지어 100년이 훨씬 넘은 작품이 불과 몇 십만원에도 팔리지 않을 지경이다.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한국화 6대가'는 누구인가. 이당 김은호, 심산 노수현, 심향 박승무,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등 당시 생존작가들이었다. 물론 이전의 작고 작가인 춘곡 고희동, 묵로 이용우, 정재 최우석, 무호 이한복 등도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한편에선 6대가와 인기가 높던 작고작가 4인을 합쳐 '10대가'로도 불렀다.

수화 김환기의 작품이 47억원에 팔리는 서양화 대세 속 한국화의 존재감은 위축되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의 다양성이나 혼·융복합 바람으로 한국화는 시장에서 외면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화는 죽었다'는 화랑가의 말은 사실일까. 실제로 경매시장에서도 저평가와 함께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6대가가 호흡기를 달고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간 '아트프라이스'가 11월호에 분석한 한국화 6대가의 2000~2015년 경매 낙찰률 분석에 따르면, 청전 이상범이 다른 6대가보다 10배 정도 낙찰률이 높았다.

국내 미술시장은 2005년 이후 급속히 확장돼 2007~2008년은 연간 경매 낙찰총액이 1000억원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다. 분석결과 한국화의 6대가 역시 2006년부터 거래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술시장의 경기가 급격히 하락한 2009년 이후에도 2013년까지 낙찰총액이 꾸준히 늘어났다.

한국화 6대가의 낙찰총액 순위는 1위에 오른 이상범(75억6000만원)에 이어 변관식(31억6000만원), 허백련(12억2000만원), 김은호(11억2000만원), 노수현(6억2000만원), 박승무(4억3000만원)로 집계됐다.

낙찰된 작품수를 봐도 이상범(677점)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이어 허백련(517), 변관식(376), 김은호(330), 박승무(266), 노수현(136) 순이다. 낙찰률 1위는 심향 박승무 69.3%, 2위는 이당 김은호 67.1% 이다. 6대가의 낙찰률은 60% 중반 전후다. '6대가 이름값'만이 남은 한국화 시장인 셈이다.

김윤섭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은 "2007~2008년 국내 미술시장의 호황기에 힘입어 한국화 낙찰총액이 동반 증가했지만, 전체 시장에서 한국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다른 연도에 비해 가장 적은 0.7% 선에 그쳤다"면서 "더불어 2009년 이후 증가세를 유지한 낙찰총액의 경우, 시장경기가 좋지 않을 시기임에도 매도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한국화 6대가에 대한 시장 선호도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는 측면과 불경기에 우선 매도하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란 양면성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미술시장에서 한국화 장르의 위상을 되찾고, 선호도롸 유통의 비중을 높여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화'라는 모호한 명칭부터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한국화의 명칭의 모호함은 단어 자체에서도 나타나지만 작가나 작품의 현장에서도 방향타를 잃은 한계점을 보여준다"면서"대학에서 굳이 채묵화, 유화와 아크릴 중심의 회화를 나누지 않고 통합운영하는 것도 대안이며 한국전통회화 분야의 학과를 국책분야로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급격한 주거문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의미부여를 해나갈 것인가도 관건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이나 포용적인 인식부족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당대 미술계는 외래문화에만 의지하면서 자신의 역사와 당대의 이슈 논제에 너무 소홀해왔다.

최병식 교수는 "2005년 이후 2년간 미술시장의 급격한 상승세 속에서도 소외되었고, 고미술품의 저평가와 함께 근대 6대가 이후 다수의 한국화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대 한국화의 기치를 내걸었던 수묵운동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급격히 퇴조하며 글로벌 트렌드의 보편성, 자국의 정체성 획득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모두 상실하는 형국이 됐다"고 꼬집었다.

최근 위작논란이 재점화된 천경자의 작품도 전통채색기법으로 제작된 한국화다. 진위 문제에 가려 천 화백만의 채색화 본질이 지닌 남다른 조형미와 미술사적 의미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천 화백의 경우처럼 경제적 가치로라도 작품이 조명되는 건 다행이라지만, 무심결에 묻혀 사장되거나 유명무실해진 한국화 작가들은 없는지 다시 살펴보는 것 역시 우리의 과제이다.

이 시대에 진정한 전통이란 무엇인가? 수묵과 채색, 그 어느것이 진정한 한국의 전통재료인가? 명확히 말한다며 재료 그 자체는 한국의 전통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재료와 소재, 형식의 문제를 넘어서 역사를 품고 문화의 자산을 재해석하는 노력이 어느때 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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