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일보 편집국장
뜬금없는 '개헌론'이 또다시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불씨는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1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20대 총선이 끝난 이후에 개헌을 해야 된다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생각이고, 국민의 생각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며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의 이원집정부제가 현재 5년 단임제 대통령보다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친박계가 개헌론을 금기시해왔다는 점에서 홍 의원의 이같은 발언은 친박계 핵심 의원이라는 무게감이 더해지며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그가 들고나온 '이원집정부제' 운운 발언을 두고 친박계는 '사견'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새누리당내 비박계까지 일제히 성토에 나서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 의원은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이다

홍 의원의 이날 발언을 놓고 여권 내부의 권력 다툼, 특정계파의 장기집권 플랜이라는 노림수가 담겨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마땅한 대선후보군이 없는 친박계가 반기문을 내세워 김무성을 저지하려 한다는 해석은 친박계 내부에서는 정설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오세훈 대망론' 역시 친박계의 김무성 저지 카드 중의 하나다.
결국 홍 의원의 발언은 여권 내부의 지리한 권력다툼의 속내를 내비친 것에 불과했다 .

이원집정부제는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로부터 나오고, 총리 선출권은 다름아닌 의회 내 최대 계파를 보유한 쪽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반기문을 대통령에 세우고, 국내 정치를 총괄하는 총리는 친박계에서 가져가겠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퇴임 후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장기집권 플랜에 다름아니다라는 '과한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朴대통령은 이원집정부제를 원할까?  문제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다.

박 대통령이 1998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개헌에 대한 입장은 한 가지였다. "개헌을 해야한다면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해야한다"는 것.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분명히해왔다. 지난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제안한 '연정'은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 성격을 내포했다. 그때 박근혜 대표는 "민심을 얻는 것이 정국 주도의 길"이라며 "연정이 아니라 선거를 치러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개헌에 반대했다. MB정권이 반환점을 돌자 당시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이 개헌전도사를 자청했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대꾸도 안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과거 두 차례 사례에서 개헌을 거부한 이유는 "민생이 어려운데 웬 개헌이냐"는 것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속내는 차기 대권 차례가 자신인데 왜 괜한 사정변경을 하냐는 것이었다.

이같은 이력의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반 이후에 친박계가 내놓은 개헌론에 힘을 실어줄 경우, 정치적 역풍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이런 위험 부담까지 안고 개헌론, 더욱이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받는다는 것은 쉽사리 가정하기 힘들다는 게 아직까진 중론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최근 개헌론을 꺼냈지만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 방점을 찍었다.
대통령 정무특보 출신인 윤상현 의원은 이날 "개헌 논의는 내년 총선으로 구성되는 20대 국회에서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며 개헌론 불지피우기에 반대했다. 윤 의원은 특히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의견은 개인의견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친박핵심 조원진 원내수석도 "지금이 개헌 논의를 할 때냐"며 "개헌이야기를 하는 건 전혀 잘못된 방향"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반기문 대망론이든, 오세훈 대망론이든 모두 친박계에서 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친박계의 '천적' 김무성을 저지하겠다는 노골적인 속내를 품고 있다는 지적이다.

친박계 핵심인사는 "솔직히 '성골 친박' 중에서는 대중 지지도를 얻을만한 대권주자는 없다"며 "때문에 김무성 대표와 맞설 카드로 반기문, 오세훈이 거론되는 것"이라고 친박계 속내를 내비쳤다.

그는 "솔직히 올해 초 까지만 하더라도 '반기문 대망론' 보다는, 그나마 과거의 동지 '원조 친박' 김무성 대표와 어떡하든 함께 가보자는 분위기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청와대의 의중도 그렇고, 김 대표 본인도 아마 친박계와는 함께 가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박계의 한 인사는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사에서 권력자가 2인자를 선택해서 당선된 사례는 없다"며 "차기 주자가 대중의 구미를 간파하고, 권력자와 강하게 맞설 때만이 권력을 차지했다. 그래서 권력은 '이양' 하는 것이 아닌 '투쟁'해서 얻는 것이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반기문, 오세훈, 김무성 모두 '차기 권력'을 얻을 자격은 아직까진 미달"이라고 단언했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홍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면서도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개헌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다만 시점이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친박계 핵심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석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홍 의원이 언급한 대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한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구도는 확실한 차기 주자를 확보하지 못한 친박계로서는 환영할 만한 구도라 할 수 있다.

현재 친박계에는 홍 의원을 비롯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이주영.유기준 전 해수부 장관 등 다선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만 차기 대권주자로 꼽을 만한 인물은 아직 없는 상태다.

결국 홍의원은 '이원집정체 발언'은 계파를 챙기고 정권을 연장해보겠다는 속좁은 발언이라는 지적에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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