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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회장의 경영철학으로 본 “사업은 예술이다”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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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30  16: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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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1945년 한진그룹의 모태인 한진상사를 창업한 이후 창의와 신념으로 수송사업 외길을 개척하여 한진그룹을 육·해·공 종합 물류 수송기업으로 키워낸 기업인이다.

2015년 11월 1일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진그룹은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하는(輸送報國) 신념으로 평생을 수송 외길에 바쳐온 조중훈 회장을 추모하고, 이를 통해 한진그룹의 성장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동시에 국가 교통 및 물류산업 발전사를 조명하기 위해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4년 6개월 걸친 준비 기간 동안 40여 명에 달하는 원로, 물류 전문가 등 인터뷰이의 증언을 기반으로 담아낸 392쪽 분량의 <사업의 예술이다>는 대한민국 현대 수송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에서 한진그룹을 세계적인 수송 물류 전문 기업으로 성장시킨 조중훈 회장의 핵심 경영 철학이 곳곳에 녹아 있다.

‘지고 이기는’ 겸손함.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신뢰. 수송을 핵심사업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온 조중훈 회장의 모습을 담아낸 <사업은 예술이다>는 창의와 혁신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이룩했던 창업 1세대들이 던져주는 교훈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 겸손의 경영 - “지고 이겨라”

조중훈 회장은 처음엔 지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투자도 없이 이익만을 바라는 것은 사업이라기보다 도박이나 투기에 가까운 것이고, 항상 이기기만 바라는 것 또한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오만과 통한다고 봤다. 조중훈 회장은 ‘지고 이기는’ 신념으로 욕심을 버리고 신용을 쌓았다. ‘지고 이겨라’는 창업주의 유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가장 존중하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조중훈이 미군에게 확실한 신뢰를 얻게 된 극적인 사건이 있다.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파카를 차떼기로 팔아먹은 것이다. 어렵사리 미군의 신뢰를 얻어가고 있던 때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운전기사는 인수장에 미군의 사인까지 받아왔다. 서류가 있으니 변상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조중훈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조중훈은 지고 이기는 길을 택했다. 도난품이 남대문시장에 넘겨질 것이라 판단하고 직원들을 보내 시장을 지키게 했다. 예상대로 물건이 나돌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상인들의 원성만 살 뿐, 물건은 자취를 감추기 십상이었다. 겨울이 되기 전이라 파카는 아직 팔리지 않은 상태였다. 조중훈은 장물을 취득한 상인에게 약간의 이문까지 보태주고 1,300벌에 달하는 파카를 되사왔다. 파카 구입비용으로 사채시장에서 3만 달러나 융통했다. 빚을 내 신용을 산 것이다.

이 일은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였지만 미군에게 변상금이 아닌 현물을 인계했을 뿐 아니라 미군에게 확고한 신용을 얻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군들은 한진과 조중훈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달라졌다. 조중훈은 3만 달러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믿음을 얻었다. 조중훈은 한 걸음 한 걸음 견실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것, 지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비결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에어버스를 구매할 당시 대한항공 안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밖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자칫 한국과 프랑스 간 외교마찰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한항공 성장의 발자취를 되짚어볼 때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회였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중훈의 ‘지고 이기는’ 지혜가 또 한 번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한선주는 한진해운뿐 아니라 조중훈의 경영항해에도 치명적인 암초가 될 수 있었다. 부실하기도 했지만, 인수과정에서 손실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화근이 되었을 것이다. 앞을 내다보고 사업을 만들어가는 혜안과 ‘지고 이기는’ 초연함으로 조중훈은 정치적 풍파를 피했을 뿐 아니라 한진해운을 세계적인 해운사로 키울 수 있었다.

■낚싯대 경영 – “핵심 가치에 집중하라”

조중훈 회장은 모방사업, 즉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확장을 거듭하는 무모한 행동도 자제했다. ‘낚시대를 열 개 스무 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 진정한 낚시꾼은 한 대의 낚시대로도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는 조중훈 회장의 ‘낚시대 경영론’에 따라 한진그룹은 수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업만 운영하는 종합물류그룹으로 성장했다.

훗날 조중훈은 이런 철칙으로 무리한 사업확장을 경계했다. 한국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1970년대 기업마다 물불 안 가리고 사업을 확장할 때 한진 임원들도 “땅을 사고 공장을 지어 제조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했지만, 조중훈은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모르면서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며 ‘수송외길’을 고집했다.

조중훈은 이런 사업철학을 유명한 ‘낚싯대론’으로 정립했다. 낚싯대를 여러 개 드리운다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를 잡아 하나의 낚싯대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낚싯대론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우리 기업들을 각성시킨 ‘선택과 집중’과 일맥상통한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위협요인을 최소화하는 위기관리 전략을 일찍이 터득하고 실천했던 것이다. 낚싯대론은 오늘날 한진이 세계적인 수송그룹으로 우뚝 서게 한 안전장치가 되었다.

남이 개척해놓은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던 것도 다른 업종의 사업가와 기업을 존중하고 배려했기 때문이다. 1978년 당시 김해공장에서 직원들 간식으로 매일 빵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담당임원은 빵집에서 구입하지 말고 직접 만들어 주면 비용이 적게 든다며 아예 빵 굽는 기계를 구매하자는 품의서를 올렸다. 그랬더니 조중훈이 말했다 “빵장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수송외길을 벗어나 제조업에 손을 댔다면 한진의 고객사는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 결단의 경영 - 사업은 타이밍

사업에서는 정확한 판단력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조중훈 회장은 사업가로서 동물적인 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감각은 현장에서 체득한 것이다. 기회라는 의미에서라면 사업은 ‘운’도 있겠지만, 조중훈 회장은 그 찬스가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기업을 도약 시키는 것은 운이나 요행수가 아니며, 시의 적절한 판단과 결단력,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중훈은 그해 12월 경제시찰단을 꾸려 동남아 순방에 나섰다. 시찰단이 탄 비행기는 베트남 퀴논항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조중훈은 좁은 창으로 넓은 퀴논항을 내려다보았다. 항구는 그야말로 ‘물 반 배 반’이었다. 미국과 홍콩 등 각지에서 물자를 싣고 온 대형 선박들이 밀물처럼 몰려와 정박하고 있었다.

순간 조중훈은 직감적으로 그런 정체가 하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역을 기다리는 선박들을 보자마자 사업아이템을 잡았다. 함께 간 기업인들이 볼세라 조중훈은 눈으로 사진을 찍어둔 다음 얼른 고개를 돌렸다. 사실 옆사람들이 퀴논항에 정박한 배들을 보았다고 해도 조중훈처럼 사업아이템을 잡지는 못했을 테지만, 조중훈에게는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을 만큼 가슴 벅찬 광경이었다.

조중훈은 자신감을 가지고 귀국했지만 임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한진이 감당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중훈은 “사업은 타이밍”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반대를 물리쳤다. 이것은 사업을 하면서 체득한 경영원칙이었다. 타이밍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조중훈은 ‘시간경영’에 선구자적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밍은 지혜와 감각으로 포착해야 한다. 조중훈의 이런 기회 포착의 예지는 경험과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데이비드 흄 David Hume은 “경험을 통해 배우며 경험의 힘이 기회포착 능력을 가져온다”고 했다.

조중훈은 사업가로서 동물적 감각이 있었다. 항공기를 새로 구입할 때의 일이다. 기획실 직원들이 며칠 밤을 새워 꼼꼼하게 보고서를 만들어 예상 단가와 손익을 계산했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보고였다. 하지만 조중훈은 보고서를 덮고 미국에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그 길로 보잉을 찾아가 항공기를 12대나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항공기를 12대나 사겠다고 하자 침체에 빠져 있던 보잉도 일어서고, 보잉 본사가 있는 시애틀의 경기도 살아났다. 그러자 구입을 미루어왔던 다른 항공사들이 하나둘 몰려들더니 몇 달이 지나자 항공기 가격이 껑충 뛰었다. 대한항공은 싼 값에 항공기를 입도선매하고 보잉과 돈독한 관계까지 맺게 되었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보고서보다 조중훈의 직감이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 신뢰 경영 - “신용 정신”

조중훈 회장은 사업 초창기부터 신용과 자금관리를 기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는 더욱 힘들고 자금 역시도 치밀한 계획 없이 처음에 다 쏟아 부어 뒷심이 없게 되면 큰 사업을 이루기 힘들다.

조중훈은 자금관리와 함께 신용을 중시했다. 한번은 직원이 빌린 자금을 상환하는 업무를 게을리 해 기일을 하루 넘기고 말았다. 조중훈은 훗날의 경계로 삼고자 퇴직금을 주고 직원을 해고한 뒤 곧바로 채권자들을 찾아가 정중히 사과했다. 조중훈은 훗날 항공공사와 대한선주, 조선공사 등 부실 공기업을 인수하면서 인위적인 감원을 실시하지 않았다. 급여를 미룬 적도 없었다. 이것은 사업가로서 그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당시 직원을 해고한 것은 얼마나 신용을 중시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刻削之道 鼻莫如大 目莫如小 조중훈이 금과옥조로 삼은 한비자의 명언이다. 사람의 얼굴을 조각할 때는 코는 크게, 눈은 작게 새겨 놓고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코를 작게 해놓으면 다시 크게 만들 수 없고, 눈을 크게 해놓으면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중훈은 신용을 얻는 것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는 힘들다. 한진상사의 초기 사업이 순항한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용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조중훈은 고객관리에서 신용을 철저히 유지하고 경조사에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 輸送報國 –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하라”

조중훈 회장이 ‘한진’을 설립한 것은 기업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경영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은 한민족 전진(韓民族 前進)의 의미를 새긴 것으로,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하겠다는 조중훈 회장의 신념이 담겨 있다. 특히 수 많은 업종 중에서 운수업을 택한 것은 ‘교통과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므로 수송으로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철학이 뒷받침됐다.

그만큼 거절했으면 정부도 포기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이조중훈을 청와대로 불렀다.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국력이 뻗치는 것이라고 여겼던 대통령은 “국적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보는 게 소망”이라며 항공공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대통령은 당시 외교에 큰 비중을 두어 한 해 두 차례 정도 해외순방을 하고 있었다. 조중훈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해운에 관심이 많았다며 해운공사라면 맡아보겠다고 어렵게 말했다. 대통령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해운공사는 이미 맡겠다고 한 사람이 있으니 항공공사를 맡아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조중훈은 국적기를 타고 세계 각국으로 가보고 싶다는 대통령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갈등을 풀기 위해 김종필 총리가 프랑스 정부에 접촉을 시도했는데, 프랑스 정부가 관계를 개선하려면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매해달라고 한 것이다. 규모는 앞서 북한이 구매한 건설장비 규모에 상응하는 2억 달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조중훈밖에 없었다.

조중훈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에어버스 항공기는 성능 파악도 안 되어 있는데다 에어프랑스와 루프트한자 외에는 어느 항공사도 주문하지 않고 있었다. 주주국인 영국과 스페인의 항공사들조차 주문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가 외교상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된 조중훈은 정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백지종군의 심정으로 외환은행의 조건을 따르겠습니다.”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白衣從軍에 빗댄 ‘백지종군 白紙從軍’으로 외환은행이 제시한 대로 총부채 7,000억 원 중 4,000억 원을 떠안기로 한 것이다. 기업 이익보다 국익이 우선한다는 원칙으로 눈앞의 부채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투자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파격적인 수용이었다.

■ 감동 경영 - "믿음과 배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조중훈 회장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그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조중훈 회장의 사람의 대한 신의와 배려는 인간적이었다. 아들을 직원처럼, 직원을 아들처럼 여겼다. 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조중훈은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장병들에게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한국군 군복을 입은 사람이 한진상사를 방문하면 누구나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도록 했다. 미군 시레이션이나 찐밥이 입에 맞지 않은 한국병사들은 한진상사에서 정성스럽게 주는 밥에 김치와 찌개를 먹는 맛에, 외출이나 외박을 나오면 한진상사부터 찾았다. 조중훈은 한진상사 직원들이나 파월 장병들이나 모두 이역만리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며 일하고 있는 만큼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상사의 배려로 한국군의 사기는 충천했다.

해운업계 최초로 ‘가족동승제’도 실시했다. 거친 항해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선원들에 대한 배려였다. ‘여자가 배에 타면 액운이 낀다’는 속설 때문에 여성 선원조차 뽑지 않던 시절에 가족동승제는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한진해운 선원들의 이직률은 더욱 낮아졌다.

조중훈은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늘 담배를 지니고 다녔다. 집무실 응접탁자에도 언제나 담배와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마주앉으면 애연가처럼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하고 자신도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상대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몇 모금 빨아당기는 척하다가 슬쩍 재떨이에 비벼 껐다. 나중에 조중훈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대는 그런 깊은 배려에 감탄하곤 했다

1998년 30년 넘게 동고동락한 참모의 아들이 희귀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인하대병원 암센터장에게 꼭 살려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 고 날마다 환자의 상태를 알려달라고 일러두었다. 두 달쯤 지나 암센터 장으로부터 “최선을 다했지만 가망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조중훈은 참모를 불렀다. 말문을 열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참모는 30 년 가까이 조중훈을 보필하면서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인재 경영- “가장 뜻있는 일은 인재를 키우는 것”

조중훈 회장은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바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게 조회장의 평소 지론이었다. 조중훈 회장은 “사학(私學)을 운영하는 목적은 육영사업의 보람을 찾는데 그쳐야지, 일시적으로 반짝 광이나 내고 보자는 식의 자기 과시적인 지원이나, 당장의 과실(果實)만 염두에 둔 것이어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면서 인재양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하면서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왔다.

대통령은 조중훈을 떠올렸다. 베트남전에서 신용 하나로 미군들로부터 용역사업권을 따내 성공한 조중훈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직원을 아끼고 교육투자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듣고 있었다. 대통령은 조중훈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베트남전 용역사업으로 기반을 다져놓긴 했지만 당시 한진상사는 한일개발을 설립하고 인천에 부두를 건설하는 등 벌여놓은 사업이 많아 다른 데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더욱이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대학을 인수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는 그랬지만 조중훈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하와이 교민들의 땀과 눈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소에서 주경야독하며 동포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이역만리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조국의 동량을 키우려 했던 하와이 교민들의 마음을 조중훈은 공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천은 조중훈이 한진상사의 첫 사무실을 연 곳으로 그룹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하와이 교민들의 염원을 위해서도,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지역을 위해서도 인하공대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업가는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보다 ‘번 돈을 얼마나 가치 있게 썼느냐’로 평가받는다. 기업 이윤은 사회로 돌려져야 한다.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내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교육은 백년대계이고 육영사업은 무한궤도 같다. 끝이 없다. 나는 항상 ‘기업은 인간’임을 마음에 새겨두고 인재양성에 애썼다. 나의 육영사업이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동량을 양성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석학원과 인하학원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나의 정성을 회사 발전과 국가 안녕에 일조할 기회로 활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조중훈은 사학을 운영하는 목적이 인재를 키우는 보람에 그쳐야지 반짝 광이나 내고 보자는 식의 과시적 지원이나 당장의 결과만 염두에 둔 것이어서는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노블리스 오블리제 – “국익을 우선하는 민간 외교관”

조중훈 회장은 수송외길을 개척하며 민간 차원에서도 훌륭한 외교를 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기업이 사업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 말고도 민간외교를 통해 국익에 일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진의 사업이 계속 밖으로 뻗어가면서 조중훈의 명성도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고 정부의 요청으로 외교를 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민간외교가로서 조중훈은 전후 50년 한국 외교사 곳곳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조중훈은 검증도 되지 않은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매하면서 북한의 WHO 단독가입을 둘러싼 한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간 외교 마찰을 일거에 해소한 바 있다.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는 프랑스 항공산업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고,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조중훈의 용단은 이후 프랑스와 한국 간 외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고리원자력발전소 4호기를 건설할 때도 조중훈의 외교력이 빛을 발했다. 당시 한전은 4호기 건설에 프랑스 알스톰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좀처럼 협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할 사람이 조중훈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조중훈은 엘리제궁의 협조를 구해 알스톰과의 기술제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1981년 8월, 한국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를 순방 중이던 조중훈에게 서울에서 전보 한 통이 날아들었다.

「올림픽유치대표단이 83차 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납니다. 바덴바덴으로 가서 합류해 주십시오.」

정부 고위 당국자 이름으로 된 통보였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서울의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프랑스 IOC 위원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각별한 인연으로 프랑스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조중훈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의 WHO 단독가입을 저지할 때 막후에서 프랑스를 설득한 전력 때문이기도 했다.

■ 사업 예술론 – “사업은 예술이다”

조중훈 회장은 ‘사업은 예술’이라는 신념을 믿고 이끌어온 경영인이다. ‘사업은 예술’은 기업가도 예술가의 신념과 노력으로 모든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조중훈 회장의 기업 경영 철학이 표현되어 있는 단어다. 조중훈 회장은 한진그룹을 육·해·공 종합물류기업으로 완성하는 동안 신념과 창의로 수송분야를 개척하면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기업인이다.

조중훈은 항공을 멋지게 하고 싶었다. 민영 대한항공을 이륙시키면서 사업가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사장이 아니라 화가처럼 노선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항공기 도입을 결정한 다음 조중훈은 국제선 항로를 확보하기 시작했 다. 외화를 벌어들여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외국 항공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국제선 노선을 확대하는 것이 절실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향후 10년, 20년, 50년을 내다보고 대한항공이 취항할 노선을 그렸다. 그는 서울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두고 미주 노선과 유럽 노선의 거점을 잡았다.

오늘날 대한항공이 개척해 운항하는 그물망 같은 노선도를 보면 40여 년 전 조중훈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선견지명을 가지고 밑그림을 그렸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한항공 노선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멋진 그림이며 예술작품이다

예술혼을 불태운 사업의 거장, 조중훈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사업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은 능력이 아니라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업은 사업가에게 예술작품과 같다. 남을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혼을 담아야 한다. 사업가의 창의력과 아이디어, 노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예술에 완성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사업은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 하는 과정이다.”

조중훈의 예술정신은 전 세계에 길을 열고 하나로 연결한 수송의 걸작을 완성하는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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