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성춘 전 mbc사장
나라 안팎의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이웃인 동북아 정세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를 모르겠고 야권 세력이 재편되면서 석 달 뒤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향해 폭주가 예상되는 ‘한국정치권’의 거친 숨소리에 국민의 마음이 편치 않다.

중국은 1당 독점체제에 의한 국가주의로의 질주가 거침이 없고,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은 올해 전국선거가 없는 틈을 타, 여론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지자 내각각료회의를 통한, 복고주의적 우경화 정책, 특히 외교 안보 정책을 전광석화로 처리해 가는 중이다.

중국이나 일본 모두 민족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이른바 ‘국익 확대’ 전략에 시동이 걸렸다.
일본 현 내각의 대신(장관)들은 ‘아베’의 충직한 손발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국제적 고립은 일본 안에서는 이성적 비판세력을 약화시키고, 극단적 우익의 의도대로 ‘일본국론’을 더욱 탄탄하게 조이는 악순환으로 작용돼 일본이 어디로 가려하는지, 앞길이 캄캄하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 ‘일본이 자폭의 길에 들어서는가.’

문 밖을 나서도 세상이 어지럽고 집안에 들어와도 어수선하다.

이러할 때 국민의 마음을 다잡아 주고 집안정리를 해주는 일이 이른바 ‘정치’가 하는 역할이다. 국민은 왜 세금을 내고 정치인들에게 그 많은 생활자금을 제공하는가. 다시 한 번, 아니 두 번 세 번 또 묻고 가자. 한국정치인은 무노동 무임금의 제일 표적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데는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국가의 생존과 위상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삶의 자원을 확보해야 할 제일 책임 영역인 ‘정치 공동체’가 한국에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가 하는 의문과 불안에 다시 휩싸이는 상황이다.

우선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통합신당 창당을 둘러싸고 상대방에 대한 정치권의 저급한 막말 전쟁을 보면서(언론의 주장들을 포함해) 느끼는 건, 욕하면서 배운다고 북한 관영 매체들이 한국에 대고 퍼붓는 비난, 저주와 오십 보 백 보다. 한국정치가 ‘말버릇’을 고치면 그것도 새 정치다. 한국 정치는 언제 쯤 ‘언폭’(言暴)을 청산할까.

과거 ‘안철수 신당’은 정권교체를 제일로 하는 통합정당을 지향한다고 했었고, 민주당과의 합당 발표 이후에도 자신들의 목표는 제 1당과 제 2당의 보완세력으로서의 제 3당이 아닌, 새누리당 정권을 교체하는 대체세력 형성이 창당 목표라고 밝힌 것으로 기억 한다.

만약 새누리당이 ‘1당독점적체제’를 꿈꾸고 안철수 세력의 제도 정치권 진입을 계기로 야당이 두 세 개로 쪼개져 그야말로 야당이, 여당 대체세력이 아닌 보완세력으로, 즉 위성정당이 등장하길 기다렸다면 이는 착각이다. ‘안’의 세와 민주당이 합쳐질 것이란 것은 정치 평론가처럼 어렵게 말하지 않고(쉬운 것도)도 국민은 다 알고 있었던 터다.

지금의 대통령제에서는 2대 정당제가 현실이다. ‘환경당’이나 ‘녹색당’, ‘지역당’이나 ‘4대강당’을 만들 수는 있겠으나 소선구제에서는 의석을 얻기가 어렵다. 불가능하다.

선거구가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양당제가 일반적인 상식이다.

다당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중선거구제가 되든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든지 하면 사표(死票)도 줄이고 제 3당, 4당의 ‘전문점 정당’이 출현하게 되며 ‘연합 정치’의 텃밭도 마련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제 3당인 자유민주당은 과거 양당제의 한 축인 자유당에 뿌리를 둔 정당으로, 보수, 노동당 등 2대 정당의 부패에 반발한 유권자가 잠시 피난처로 삼았을 뿐, 양당제의 근간은 흔들림이 없다.

통합신당은 정권교체가 최우선 정당 목표임을 강조하고 있다. ‘백화점 정당’, 특정 계급의 정당이 아니고 정권을 맡을 국민 정당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야당이 재편, 총집합 하는 것인데,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대 정당’ 제도가 현실이라면 이것이 ‘새 정치냐 구태 정치냐’를 따질 계제가, 지금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해 건전한 정권 교체 세력이 태동하도록 격려하고 훈계하고, 이 기회에 집권 여당도 갈고 닦아 더 세련, 성숙한 정권 운영을 하도록 다그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함에도 새 정치의 의미도 이해시킬 능력도 없고 내용도 갖지 못한 기존 정당이나 언론이, 국민을 향해 ‘새 정치냐 헌 정치냐’만 묻고 있으니, 역시 새 정치를 파악할 자료가 없는 국민들도 답답하다.

“당신들은 새 정치가 뭔지 알기나 해?” 국민이 정치권과 언론, 정치학 연구자들에게 묻고 있다. “새 정치라고 보느냐”고 묻는 여론조사 항목이 다분히 정파, 정략적으로 보인다.

결국 새 정치연합의 새 정치란 야권의 재편인데, 국민의 입장에서는 ‘누가 누구를 먹고 먹히느냐, 누가 호랑이고 토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역주의 정당을 추방하고 책임 있는 야당세력을 형성해 여당을 이성적으로 견제, 감시해 민주주의가 활력을 되찾아 썩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새 정치가 ‘하늘나라 정치’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태양 아래서 새로운 것은 없다.’(구약 성서) 물이 비가 되고 눈도 되고 다시 강물이 되고 또 물로 돌아온다.

‘새 정치’, ‘새 언론’이 가능한 것인가. 정치인들이 헤쳐 모여 하면서 입에 붙은 말이 새 정치다. 그것이 한 두 번인가. 그러나 국민이 그런대로 넘어가는 것은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미래의 희망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 것’ ‘헌 것’을 따지지 말고 대안의 지혜를 모으도록 정치권, 언론. 전문가들이 나서주는 일이다. ‘네가 무슨 새 것이냐’고 싸우는 일은 그만 두자. 하늘 향한 주먹질이며 공론(空論)이다.

공연히 있지도 않은 ‘새 것’ 찾기에 헛힘 쓰지 말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질서의 틀을 잡는 실사구시의 내용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만, ‘태양은 날로 새롭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잠언을 떠올리면 어제의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닌 점, 우리의 노력으로 너와 나는 새로워 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너와 나는 헌 것이자 새 것이다. 더 이상 낭비적인 논쟁은 접고 눈앞의 선거에만 매몰돼 국가의 방향타가 부서지면 국민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앞서 정치인의 ‘말버릇’만 고쳐도 ‘새 정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결단만 하면 ‘헌 정치’를 새 것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항목이 즐비하다.

이번에 통합신당이 기초단체 선거 공천제 폐지를 결단했는데, 이는 절대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기초 선거의 공천 폐지는 그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민 공동체의 ‘직접 민주주의’의 단초가 될 것이며 국회 개혁에도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전국 규모의 국정(國政)은 대의제(代議制)로, 기초 주민 공동체인 지방정(地方政)은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로 가야 할 것이다. 주민 참여율이 높아야한다.

지역 마다 현안 문제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 지도자는 가능한 한 그 지역의 실정에 맞는 ‘맞춤형’이여야 한다. 건설, 복지, 문화, 관광 일꾼 등 리더의 폭이 다양해야 하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뛰는 ‘촌머슴’ 형도 있어야한다. 농촌이 다르고 산촌, 어촌, 또 인구가 4~5십만이 넘는 중급 기초 단체 등 실정이 저마다 다르지 않는가.

자연이 정당 보다 인물의 능력이나 다양한 일꾼들의 개성들이 돋보이는 선거가 돼야 한다.

공천제를 없애면 “로또 선거가 될 것이다” 심지어 “조폭들이 출마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물론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 발전을 길게 보면, 지금의 공천실태가 일으키는 악의 뿌리를 뽑아내고 국회 개혁의 단초, 대 국민 약속이란 측면에서도 통합신당은 옳은 방향에서 도전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공천제 폐지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일은 지금부터다.

통합신당의 안철수·김한길 공동 대표는 6월 지방선거를 지역실정에 맞는 ‘지방 선거 다운 선거’가 이뤄지도록 확실한 주도권을 잡으라.

그것은 이번 6·4지방 선거는 “박근혜 정권을 중간 평가하는 선거가 아니고 각 지역 실정에 따라 정당 중심이 아닌, 그 지역 주민들이 기다리는 지역 일꾼을 결정하는 선거”라고 담대하게 선언하는 일이다.

지방선거가 전국 동시에 실시되고 정당 중심이 되니 지금까지 정권의 중간평가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보니 극단으로 치닫는 정당 대결이 지역의 현안을 집어 삼켜, 지역 선거를 왜 하는 지도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지역 선거는 주민 입장에서 보면 광역 보다 기초 단체가 더 중요한데도 시장 군수 구청장, 지방의원 선거를 대통령 선거처럼 정당만 바라보고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선거 후 책임지지도 않을 정당만 보고 찍어라?

새 정치를 하려면 기초 선거에서만은 무소속으로 나올 통합신당 지지자들도 그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이나 사업프로젝트라면 그것이 새누리당 후보의 공약이라도 자유롭게 지지하고 자신의 공약으로 삼아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정당을 위한 자치가 아니라 주민을 위한 자치다.

지방선거는 여야가 숫자로 승패를 가르는 선거가 되면 안 된다. 전국적인 당선자 집계는 미디어의 기사 자료 일뿐, 중간 평가에서 합격했다고 내 정책이 옳았다, 불합격 했으니 정권을 내놔라 할 일도 아니고, 당선자 숫자가지고 정략적으로 악용할 일이 더더욱 아니다.

스웨덴의 기초 단체 선거의 투표율이 90%를 웃도는 높은 관심은 기초 자치 조직이 정당에 구애됨이 없이 자주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을 수행하고 거기에 알맞은 봉사자 그룹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오천만 국민의 눈시울이 충혈 되는 순간, 한국의 기초 자치의 실종이라는 무서운 경고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통합신당이 이렇게 해서 새누리당을 기초 선거 공천 폐지로 유도하고 지방 선거를 지방 선거답게 만들어 준다면 한국의 새 정치는 지역 자치 공동체의 텃밭을 일구고 우리는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통일 코리아 연합·연방국가’ 건설의 씨를 뿌리는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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