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빙하기 전망...취업한파가 몰려온다

 
[이미영 기자]병신년 벽두, 대한민국은 벼랑에 서 있다.젊은 청춘의 앞날을 밝혀주던 질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찾기 힘들다. 일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경합은 어느새 노노갈등, 세대 갈등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제조 코리아'의 쿵쿵 울리던 심장 역시 열악해진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박동을 늦추고 있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7.9% 감소한 5272억 달러, 수입은 16.9% 감소한 4368억 달러로 집계됐다.

국가 대계의 근간을 위한 사회, 경제 각 분야 청사진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줘야 할 교육은 아직도 'Only 대입'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본지는 2016년을 '한국이 전혀 가보지 못한,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위기의 첫 시발점'으로 규정했다.

이를 극복하려면 때론 바보스러운 양보가, 때론 사자와 같은 용기가, 때론 원숭이 같은 순발력이 요구될 것이다.

◆노사문화 변해야 산다

우리나라의 사회는 '대립의 프레임'에 갖힌지 오래다. 특히 산업 경제를 지탱하는 노동시장에서는 이같은 프레임이 일반화 돼있다. '노조는 파업을 해야 제밥그릇을 챙긴다'는 대립주의에 매몰돼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두고도 정부와 노동계는 극한 대립양상을 띠고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 법안을 연말까지 통과시켜야 하는 강경한 입장을 내보이고 있고, 노조는 사활을 걸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 내에서도 여야가 노동개혁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는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정책이라는 시각이고, 정부는 채용확대부터 나아가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필수요건이라는 입장이다. 양측이 이견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노사가 협력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임금인상과 같은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불경기에 대비해 고용불안 해소방안과 같은 중장기적인 전망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전반에 구조적인 개혁도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 노사가 협력하는 상생구조

선진국에서는 노사가 대립보다는 상생을 위한 협력관계에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파트너로 서로를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일본 완성차업체 토요타가 손꼽힌다. 토요타는 지난 2008년 미국 GM이 경영난을 겪는동안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로 부상했다. 그 배경에는 64년 무파업이라는 노사 간의 협력관계가 뒷받침 됐다는 평가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최대의 자동차회사 GM은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2009년 파산 위기에 처했다. 당시 파산에 대한 책임은 노사 갈등에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어렵게 기사회생한 GM은 일부 공장에서 올해까지 6년간 무파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노사협력으로 어렵게 기에는 성공했지만 시장을 일본 토요타와 유럽 자동차회사에 빼앗긴 뒤였다.

국내에서도 장기간 무파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1962년 설립된 이후 53년간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노사상생 문화는 한국타이어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이 헌신해 외환위기 등의 위기를 극복해왔다. 한국타이어는 세계 7위 업체로 성장했다.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상생 문화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노조와 회사가 대립이 아닌 상생하는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토요타의 경우 노조가 경영에 상당부분 개입하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노사 협력이 싹 텄다. 국내에 토요타 같은 기업이 탄생하려면 단기적으로 임금을 많이 올려주는 것보다는 경기가 안 좋을 때를 대비해 어떤 식으로 고용을 보장할 것인지 등에 대한 중장기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사간의 협력과 신뢰를 쌓아가는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시사철 투쟁, 기업·근로자 모두가 파국으로…

매년 노사협상 시기만 되면 파업으로 기업들이 몸살을 앓는다. 노동계에는 춘투(春鬪) 하투(夏鬪), 추투(秋鬪), 동투(冬鬪)라는 말까지 있다. 사시사철 투쟁으로 회사와 노조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기업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까지 악화시킨다.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4월 벌인 대규모 총파업에 이어 6월에도 크고 작은 파업을 계속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 저지를 위한 대규모 민중총궐기를 세 차례 벌인데 이어 총파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이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와 같은 세계 26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지난 2007년 11위에 오른 뒤 하향세를 걷고 있다. 특히, 노사간 협력이 132위를 기록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만큼 노동시장이 낙후됐다는 얘기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로는 지속적인 구조개혁이 꼽혔다.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의 불안정 개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단기간 실적에 따라 임금을 인상하는 노사관계는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 연구위원은 "일본 토요타는 2000년대 기업이익을 많이 냈지만 임금 인상을 거의 하지 않았다. 토요타가 올리면 다른 곳도 올려야하는 사회적인 조율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금인상을 외부와 연계하거나 조율하는 것을 꺼려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노사가 단기적인 실리에만 집착하다 보면 경기가 어려울 때 고용불안 등으로 노사 갈등을 부추기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편, 왜 추진하나

 
정부가 노동개혁을 외치며 내놓은 노동시장 구조개편 5대 법안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정부는 법률 개정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축소, 노동시장 이중화와 양극화 개선 등을 이룰 수 있다며 법안을 내놓은 상태다.

노동시장 구조개편 법안이 정부가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심각해 지는 경기침체와 고용절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직되고 왜곡된 노동시장의 개선은 시급한 상황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편 5대 법안 내용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기존에 시행령에서 규정하던 통상임금 개념을 법률에 '소정근로에 대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키로 한 임금'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다만 개인적 사정, 업적, 성과 등에 따라 지급여부, 금액이 달라지는 금품은 시행령으로 위임해 규정하도록 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최대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 정상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 등 주 68시간이 최대 근로시간이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면 정상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을 합한 주 52시간이 최대 근로시간이 된다.

정부 법안에 따르면 이를 기업 규모별로 4단계로 단계적 시행한다.

기간제근로자법 개정안은 '쪼개기 계약'을 막기 위해 계약 반복 갱신 횟수를 제한해 2년 내 3회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기간제 사용기간의 경우 일률적으로 2년으로 제한됐으나 개정안은 35세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신청하는 경우 최대 2년을 더 연장, 총 4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기로 했다.

파견근로자법 개정안은 근로자 파견 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고령자(55세 이상) 파견을 허용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소득자에 대해 관련 업무의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금형, 주조, 용접 등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도 허용했다.

고용보험법 개정안에는 실업급여 지급수준을 실직 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확대하고 지급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통상적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산재보험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다.

◇"기간제·파견 근로자 늘어나고 양극화 심해질 것"

정부가 내놓은 5대 법안이 되려 기간제, 파견 근로자를 늘려 노동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간제법 개정안에 35세 이상 근로자가 요청 기간을 최대 2년 연장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예외'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기간제 노동자 286만명 가운데 35세 이상이 200만명이다"며 "70% 이상에 이를 적용한다면 예외 사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칙의 변경이다"고 전해다.

김 위원은 "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4년이 지나 이직 수당만 주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기업 입장에서 두 명을 가지고 8년 동안 기간제 노동자를 쓸 수 있다.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고 기간제로 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견법 개정의 경우 자칫 파견 근로를 전면화 시킬 수 있다고 말한 김 위원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소득자나 고령 근로자가 대체로 400~500만명이다. 이를 새로이 파견 근로가 가능한 것으로 파함하면 사실상 전면화 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김 위원은 "현재 근로시간법에는 주 52시간이 한도다. 하지만 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부는 현행법을 주 68시간이 최대근로시간인 것처럼 제멋대로 해석해 법제상으로 후퇴한 법안을 내놨다"며 "현행법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일자리 52만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문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본부장은 "비정규직 규모 축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에 오히려 역행하는 법안이다. 기간제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간제 근로자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4년 뒤 이직 수당만 주면 고용해지가 가능하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기간제 노동자를 교체하면서 쓰지 않겠냐"고 비판했다.

정 본부장은 "파견법 개정은 위장 파견이 합법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편이 속히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정 본부장은 "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그로 인한 고용 불안 탓에 내수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보완 필요하지만 변화 동기 마련…해법 찾아나가야"

법안에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있지만, 노동시장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변화를 시도한 뒤 앞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한국 경제를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공론화의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이 법안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일종의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에는 의의를 두고 싶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와 권 교수는 모두 정부가 내놓은 법안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 교수는 "기간제법 개정안에 35세 이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본인 희망 하에 근로자 대표와 사측이 서면 합의해 기간제 노동자와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해야한다"며 "노조에 옵션을 주는 것이다. 노조가 반대하면 기간제 사용을 2년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파견법 개정에 대해서도 '상용형 파견'을 전제로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해야한다고 말한 조 교수는 "일본의 최대 노동단체 렌고를 만났을 때 물었더니 20~30%가 상용형 파견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형태의 일자리가 없다"며 "정부가 중소기업에 상용형 파견을 할 수 있도록 키워주면 가능하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기간제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나 이직 수당을 보장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라면서도 "기간제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보조적 장치가 마련되어야한다. 35세로 제한한 것도 의문이 든다. 정규직 전환을 늘릴만한 법안이라고 보기에도 획기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파견법 개정에 대해서는 파견업체의 격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권 교수는 "고령자, 전문직 파견을 완화하는 부분은 필요하다. 다만 파견업체의 적격성을 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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