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기자] 학생들은 언제쯤 유해화학물질로 만들어진 학용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새학기를 맞아 학부모들이 '안전한 학용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일부 학용품에서 환경호르몬이 최고 기준치의 370배가 검출되는 등 교육 환경의 유해물질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는 학용품에서 중금속과 환경호르몬 등이 검출됐다는 환경부 발표를 접할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서울 시내 초등학교 5곳과 중학교 1곳에서 창틀·문·책상·칠판·학습준비물·과학교구·체육 자재 등을 조사한 결과, 50% 이상이 폴리염화비닐(PVC) 소재였다. 또 납 기준을 초과한 예도 35%에 달했다.

대표적으로 고무 지우개 등 플라스틱 제품에서 많이 검출되는 '다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가 있다.

프탈레이트는 동물이나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서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er)'의 일종으로 카드뮴에 비견될 정도의 독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 실험 결과 간과 신장, 심장, 허파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여성 불임, 정자수 감소 등 생식기관에 유해한 독성물질로 보고된 유해 물질이다.

PVC는 국제암연구소가 규정한 발암성 물질이다. 생산과 폐기 시 유독한 염소 오염을 일으키고, 유해 중금속과 프탈레이트 등 환경호르몬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중금속은 피부를 자극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납, 카드뮴, 수은 등은 지능이나 신경계통 발달을 지연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용 공산품에 대한 공통적용 유해물질의 안전기준에 따르면, 14세 미만 어린이가 주로 사용하는 어린이용 공산품에는 납·카드뮴·니켈·프탈레이트 가소제(6종) 등 유해화학물질이 허용치 이하이거나 포함돼 있지 않아야 한다.

다만, 어린이의 입에 넣어 사용할 용도로 제작된 것이 아닌 어린이용 제품은 프탈레이트 가소제(6종)의 총합이 0.1%를 초과하더라도 '경고! 입에 넣으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용출될 수 있으니 입에 넣지 말 것'이라는 경고 표시만 넣으면 얼마든지 시중에서 판매할 수 있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학용품을 입에 넣고 깨무는 아이들이 이러한 제품을 구매했을 경우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용민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박사는 "인공적인 화학물질은 여러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화학물질에 민감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은 아토피나 천식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년 약 100만 명 이상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병원을 찾고 있으며, 이 중 약 60만 명이 10세 미만 어린이다.

조 박사는 "저학년 어린이들이 습관적으로 연필이나 지우개 등 학용품을 입에 넣거나 깨물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기 쉽다"며 "PVC로 만들어진 도시락을 사용할 때는 프탈레이트 가소제 성분이 열에 분해돼 음식 중으로 유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해화학물질 초과해도 '솜방망이' 처분

환경부는 2014년 4월부터 1년간 시중에 유통되는 어린이용품 3009개를 조사한 결과, 121개 제품이 프탈레이트·중금속 등 유해물질 함량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특히 일부 제품은 프탈레이트 기준을 430배(43.6%, 지우개), 납 기준을 374배(3만3690㎎/㎏, 머리핀)까지 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환경부가 이들 업체에 내린 조치는 기준을 초과한 제품들을 수거명령과 함께 관련 정보를 환경부 누리집(www.me.go.kr)에 공개하고 전국 대형유통매장 등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위해상품판매차단시스템'에 등록한 것뿐이다.

당국의 '솜방망이' 처분에 아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관계자는 "환경보건법에 제24조 10항에 따라 사용을 제한하는 프탈레이트 4종이 검출되면 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하고 있지만, 제조사를 영업정지 조치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육책으로 환경부는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와 함께 '착한 학용품 구매 가이드'를 발간해 소비자 스스로 안전한 학용품을 골라 구매할 수 있도록 맡기고 있다.

가이드는 "학용품에 화려한 색상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안료나 페인트에는 납·카드뮴·크롬 등 중금속 물질이 들어있을 수 있고, 반짝이거나 부드럽게 하려고 플라스틱 재질 부분에 프탈레이트가 사용될 수 있다"며 "사용을 자제하라"고 경고한다.

◇매년 반복되는 유해물질 검출, 소비자 신뢰 '↓'

당국의 조처가 답답한 일부 학부모는 외국에서 아이들에게 안전하다고 소문난 학용품을 공동구매하기도 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둔 이슬(28·여)씨는 "아이를 위해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학용품을 구매했다. 우리나라에도 '무독성' '친환경' 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나 정말로 인체에 무해한 제품인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KC인증마크를 획득한 학용품 중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적도 있다. 업체가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증마크를 획득한 뒤 질 떨어지는 재료를 썼던 것이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해당 제품을 수거하고, 이미 소비자에게 판매한 제품에 대해선 교환해주도록 조치했다.

녹색당은 "기업은 생산단가를 낮추고 이윤을 얻기 위해 발암물질과 화학물질을 사용한다"며 "자사 이익을 위해 정부에 로비해 유해물질 기준을 완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부모는 안전한 화학물질을 사용한 제품을 사고 싶어 한다. 생산과 소비가 만날 수 있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며 "엄마, 아빠가 똑똑해야 아이가 안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안전해야 사람이 안전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학용품에서 유해 물질이 넘쳐나는 것은 정부의 형식적 규제,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생산 단계에서부터 유해물질을 없애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소비자들의 알 권리 보장ㆍ정보공유시스템 구축ㆍ선택권 보장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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