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기'로 승부걸듯...오후 5~6시 첫판 승자

 
[조성주 기자]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간과 기계의 대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의 날이 밝았다. 이 9단과 알파고는 오늘(9일) 오후 1시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5번기 중 첫판 승부를 벌인다.

둘에게 부여된 시간을 감안하면, 이르면 오후 5시, 늦어도 오후 6시 쯤엔 승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는 인공지능이지만 대국은 실제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다. 형체가 없는 알파고를 대신해 아마추어6단인 구글 직원 아자황이 대신 바둑돌을 놓는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5번기로 치뤄진다. 이번 대회는 승패와 관계없이 대국을 5차례 모두 진행한다. 통상 3번을 먼저 이기면 남은 경기가 있어도 대국을 종료하는 것과 다르다. 제한시간은 각각 2시간이며 이후 1분 초읽기 3회가 주어진다.

첫 대국은 남은 경기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점에서 승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첫판은 총 5번기 최종 승부 방향을 정하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다. 흔히 고수들 사이에선 5번기가 이뤄질 때 첫판을 이기면 여세를 몰아 승기를 잡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 알파고는 중국 프로선수 판후이 2단을 상대로 5전5승을 거뒀다. 판후이는 첫 대국에서 알파고에 진 뒤 연거푸 패배의 쓴맛을 봤다. 판후이가 심리전에 밀렸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다.

8일 열린 개회식에서 만난 이세돌 9단은 "설마 첫판에서 알파고에 진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알파고의 강점은 체력이 튼튼하고 겁이 없다는 것이다. 알파고 대국은 시각적 피드백이 없어 나혼자 바둑두는 느낌일 수 있다"며 "그러나 알파고 경기에서 첫판에서 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과거 결승전에서 첫판을 졌지만 좋은 결과를 얻은 경험이 있고 알파고와의 심리전은 가상훈련을 통해 연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 특유의 '변칙 수'가 이번에 발휘될지도 관건이다. 바둑에는 '흔들기'와 '비틀기' 등 정석이 아닌 변칙 수가 존재한다. 프로기사 대국에서는 변칙 수가 승리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정석대로 학습한 알파고는 변칙 수 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초반에 변칙 수를 구사하면 승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는 수치화하기 어려운 '흔들기'나 '응수타진'에 취약할 것"이라며 "그러나 변칙적 수는 두고 싶다고 해서 두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수다. 억지로 변칙적 수를 만들진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알파고는 24시간 가동되는 기보(棋譜) 학습과 자가 훈련 속에 5개월 전 판후이 2단 대국에 비해 기량이 많이 향상됐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 실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흔히 ‘우주의 진리’가 담겨 있다는 말을 듣는 바둑은 직관과 감각, 상상력과 창의성이 가미된 게임으로 인간 고유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이세돌이 진다면 인공지능이 체스나 퀴즈는 물론 바둑영역까지 인간을 누른 셈이 돼 인공지능시대의 파상 공세를 예고케 하는 일대 사건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인공지능 진화가 거듭될수록 언젠가는 바둑 영역도 넘겨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적어도‘지금은 아니길’ 바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연구센터가 성인남녀 103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56.3%가 이세돌 9단의 우세를 기대했다. 31.1%는 알파고가 이긴다고 답했다. 이세돌 9단의 전승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2.9%, 알파고 전승을 예상한 응답자 비율은 11.3%로 이세돌 9단이 근소하게 앞섰다.

개회식에서 만난 이세돌 9단은 알파고 개발자가 설명한 알파고 작동 원리를 접한 뒤 '5대0 압승'에서 한발짝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인간적 실수가 나오면 완승을 못 할 수 있다"며 "잘하면 한판 정도 질 수 있겠다"고 밝혔다.

이세돌 9단은 "나는 프로기사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서 실수를 별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수가 나온다면 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알파고의 실제 약점은 바둑을 두면서 밝혀질 것이다. 알파고는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경기에 임하지 않는다.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고 이번 게임에서 내가 인간의 승리를 꼭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에 참석한 구글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10월과 비교할 때 지금의 알파고는 더 강력해졌다”고 했다. 허사비스는 “판후이 2단과 대국을 치른 이후 알파고가 많은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고 했다.

그는 “알파고가 자가학습으로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생성했고 이를 바탕으로시스템이 향상됐다”며 “이세돌 9단과 어떤 식으로 경기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누가 웃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간과 AI ‘세기의 대결’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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