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기자]“너무 고통스러웠다. 쥐 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인류 대표’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애초부터 맘에 두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면 인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보 불균형이라는 논란이 불붙었고, 3연패를 한뒤 4, 5국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변에선 얘기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섯판을 내리 지더라도 인간답게 불꽃 승부를 보여주고 싶었다. 최소한 한 게임이라도 인간의 의지가 위대함을 입증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3패의 쓰라림을 뒤로 하고 대국장에 들어 섰다. 그리고 이세돌 9단은 4국에서 마침내 귀중한 1승을 건졌다.

이세돌의 ‘세기의 묘수’(78번째 수)가 나오자, 전지전능해 보였던 알파고는 당황했고 버그까지 나면서 결국 돌을 던졌다. 3연패 뒤 1승은 위대했고, 이세돌 개인 뿐 만 아니라 인류의 승리였다.

그는 말했다.

“이 수 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이날 승전보는 전계계로 타전됐다. ‘인간이 이겼다’고

이날 대국을 생중계하던 한 방송사 여성 캐스터는 이 9단이 180수 만에 알파고의 항복을 받아내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인간 승리다. 같은 한국인인게 자랑스럽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여 울음을 터뜨렸다. 시청자들은 "정말 인간적인 모습이다. 지켜보다 울컥했다"며 격려를 이어갔다.

이 9단은 대국 후 소감을 통해 “수많은 승리를 했지만, 오늘의 1승은 어떤 승리와도 바꿀 수 없고,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귀한 것”이라고 했다.

대국자는 물론 온 국민, 아니 인간이기에 감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날의 1승은 하루가 지난 다음날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닌 영원히 기억하고픈 자부심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이세돌 신드롬’이 생겨나고 있다.

1국 후 이세돌의 비참한 표정에서, 2~3국후 풀이 죽은 모습에서도 겸손과 도전의식을 잃지 않고 의연히 대처한 직후부터 이세돌은 우 가슴속에 ‘작은거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바둑의 ‘바’자도 모르던 20~30대 여성은 물론 10대 청소년들도 열광했고 이세돌 9단의 인공지능에 지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패닉의 순간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기에 이세돌 광팬이 됐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인공지능(AI) 앞에서도 무력해질 수도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인간만의 투지’, ‘인간만의 포기없는 극한 도전’을 보여준 이세돌 9단에 따뜻한 격려와 함께 무한 신뢰가 쏟아지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기이한 현상이다. 바둑 인간 최고수인 이세돌은 알파고에 3연패했고, 바둑계는 물론 과학기술계, 산업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인간 세계, 그 자체는 엄청난 패닉에 빠졌다.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 영역이라는 바둑을 넘자, 인공지능 경계령이 뒤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 대표의 패배로 이 9단에겐 비판론 내지 책임론이 뒤따를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개인적으론 평생의 위기를 인간 승리로 바꿔 놓았다. 변명과 회피가 아닌, 예정된 패배라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승부를 그가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세돌은 ‘인간의 조건’이 뭔지를 이번 알파고와의 승부에서 보여준 것이다.

언전가는 인공지능 앞에 인간은 현재보다 훨씬 나약한 존재로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보여준 작금의 행보는 향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켜 준 ‘神의 한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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