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숙 기자]청와대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출자까지 포함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판 양적완화는 새누리당이 4·13 총선 공약으로 내건 한은의 산업금융채권(산금채)·주택담보대출증권(MBS) 인수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돼 왔으나 청와대가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국책은행 증자 방안까지 함께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하지만 법 개정이 요구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여소야대로 구성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한국은행도 한은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다만 최근 해운과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재원 지원 부문에 대해서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요청이 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임을 내비친 바 있다. 또 정부의 구조조정 안이 가닥을 잡는 게 먼저라는 입장도 내놨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양적완화로 기업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 실현가능성은?' 토론회에 참가한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가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강봉균 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경기부양책으로 제시한 총선공약이다.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권(산금채)과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매입, 직접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도 늘려주는 내용이 골자다.

◇"국책은행의 자복확충 방안 생각해야"…"구조조정은 정부 주도로"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더욱 커질 잠재부실을 다 메꿔야 하기 때문에 자본확충이 시급하다"며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생각할 때"라고 진단했다.

대우조선해양·한진해운·현대상선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중 산은·수은 등의 특수은행이 15조원을 갖고 있다.

기업의 부실 문제로 지난해 산은은 당기순손실 1조8951억원을, 수은은 전년 대비 51.8% 줄어든 411억27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조 교수는 "산은에서 산금채나 후순위채권의 발행을 통해 기금을 마련할 수 있다"며 "만약 산은에서 산금채를 발행하고 이를 한은이 인수해주면 한국판 양적완화"라고 말했다.

다만 조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한은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현실화한 가운데, 야당은 대기업으로 자금이 쏠린다는 이유로 한국판 양적완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은에 돈 쏟아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의견도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내년 대선정국이 본격화하기 전에 기업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구조조정은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에 대선정국에서 진행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 교수는 "내년 대선정국에 들어서면서 엄청난 혼란에 휩싸일텐데, 지금처럼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큰 그림이 없는 상태로는 8개월 남은 올해 안에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양적완화의 필요성에는 찬성하지만 산은채 매입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16년째 대우조선을 끌어오면서 관리능력도, 구조조정도 발휘하지 못한 산은 같은 기관에 돈을 쏟아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산은 자체가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하는 것이 양적완화"라며 "돈이 필요한 곳은 주택부문이기 때문에 한은의 MBS(주택채권)매입은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구조조정에 보다 직접적으로 자금공여"

한국형 양적완화가 기업구조조정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보다 적극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한은이 또 하나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로 본다"며 "직접적으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산은 등에서 부실채권에 대한 충당금을 쌓아뒀지만 실제 구조조정에서 자산평가와 고용문제로 인해 매각·구조조정이 어렵다"며 "부실채권을 일정한 비율로 헤어컷(부채탕감)하고 유동화해 향후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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