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 문제시 SK캐미칼이 배상’ 애경 계약서 확인

 
[이미영 기자]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파장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완제품 제조 판매의 주 공급처였던 SK케미칼이 제품 유해성을 이미 십수년 전부터 상당부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뉴시스가 입수한 'SK-애경, 가습기메이트 판매 계약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러한 가운데 SK케미칼이 개발하고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어떤 이유로 애경 측에서 판매하게 되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SK케미칼이 지난 1994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개발·시판한 이후 7년이 지난 시점인 2001년 애경과 판매 계약이 체결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쳤다.

SK케미칼의 전신 유공은 지난 1994년 11월 자사의 바이오텍 사업부 내 상품개발팀에서 18억원을 들여 가습기 살균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유공 측의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유공은 "살균제 원액을 0.5%로 희석해 가습기물에 있는 콜레라·포도상구균 등 수인성 질병균에 대해 시험해본 결과, 24시간이 지나면 100%의 살균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성분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또 유공은 "선진국에도 물때를 제거하는 제품은 있으나 살균용 제품은 없는 점에 착안, 내년 중 북미 지역에 수출키로 했다"면서 사실상 '세계 최초'라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유공은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칠소치라졸리논(CMIT/MIT)이 첨가된 '가습기메이트'를 당시 선경그룹에서 분리된 SKM(구 선경마그네틱스)이 1993년 인수한 동산C&G를 통해 판매했다. 동산C&G는 '다이알 비누', '오이 비누'로 잘 알려진 욕실·주방용품 기업이었다.

하지만 2000년 말 동산C&G의 사업 부진 속 SKM마저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경영이 악화되자 SK케미칼(1998년 유공에서 사명 변경)은 이듬해인 2001년 애경과 계약을 맺고 판권을 넘겼다.

당시 애경은 CMIT/MIT가 들어있는 '가습기메이트'를 SK케미칼에서 기존 상품 그대로 완제품 형태로 납품 받아 자체브랜드부착방식(OEM)으로 판매했다. 이는 기존 판로가 막힌 SK케미칼 측과 당시 인기 상품인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필요했던 애경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SK케미칼(유공) 가습기메이트
◆‘살균제 문제시 SK캐미칼이 배상’ 애경 계약서 확인

한편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완제품을 직접 제조·공급한 업체. 판매대행으로 애경산업을 전면에 내세운 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신들은 막후에 숨어있었던 것으로 해당 계약서에서 파악됐다.

5일 'SK케미칼-애경산업 가습기메이트 판매 계약서'에 따르면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를 제조·공급하고 애경산업은 이를 구매 및 판매한다는 계약을 지난 2001년 체결했다.

SK케미칼은 해당 계약서에서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인해 제 3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손해를 주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SK케미칼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또 가습기메이트 사용과 관련해 청구 소송 등이 제기된 경우 SK케미칼의 비용으로 이를 방어할 계획이라는 세부 내용도 작성했다.

만약 피해자들과의 화해, 판결 결정 등으로 애경 측이 손해를 배상할 경우 SK케미칼이 배상키로 했다.

특히 SK케미칼은 계약서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애경이 SK 케미칼을 적극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사실상 SK케미칼 측은 이 계약서를 통해 철저하게 애경을 앞세우고 뒤로 숨어있었던 것이다.

계약서 내용을 종합해보면, SK케미칼은 이미 이때부터 자사가 만든 '가습기메이트'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점을 어느정도 인지했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체에 해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 또는 보상을 약속하지 못한 까닭도 해당 계약서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계약서에서 애경과 SK 케미칼은 이 같은 계약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약 내용을 파기한 쪽이 가습기 메이트와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만약 애경이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입장을 밝힐 경우 이는 계약 파기에 해당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경우는 SK케미칼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 케미칼은 애경 뒤에 숨은 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사과나 보상 등을 선제적으로 약속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SK케미칼 관계자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지켜본 뒤 사과 또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보상을 추진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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