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 충주시장
뉴턴의 운동법칙 중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다.  모든 작용에 대하여 항상 방향이 반대이고 크기가 같은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모든 물체가 잡아당기는 작용을 가하면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자연의 운동법칙일 뿐 아니라 정치나 일반사회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누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하면 차라도 대접하고 싶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 상대방을 똑같이 칭찬하게 된다. 욕을 먹으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하게 된다.

성경 마태복음에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다. 대접 즉 작용이 있으면 그만한 대접, 반작용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내가 남을 대우하는 만큼 남들도 나를 대우한다.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사회활동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법칙을 깨닫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믿음조차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내가 믿으면 상대방도 믿는다. 내가 믿지 않으면 상대방도 믿지 않는다. 내가 의심하면 상대방도 의심한다.

믿지 못하는 의심 때문에 계약서도 생겼다. 계약할 때는 유리한 계약을 맺기 위해 서로 다툰다. 계약은 가진 자 즉 힘센 자에게 유리하게 체결될 수밖에 없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갑과 을의 계약관계는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복잡한 인간관계는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의 운동은 똑 같은 질량의 운동량이 되돌아오지만 사회관계에선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의 되갚음이 분명히 있다. 복수를 왜 하겠는가. 되갚아 주는 것이다.

덕담을 하면 덕담이 돌아온다. 남을 해치면 상대방도 반사적으로 앙갚음을 하게 된다. 경우는 달라도 도와준 사람 도와주고, 해악을 끼친 사람 해롭게 한다.

작용, 반작용의 운동법칙을 사회학적으로 적용한 것이 바로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다. 어떤 주장이나 논리 즉 정(正)이 있으면 이에 반하는 주장과 논리 즉 반(反)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작용, 반작용의 과정에서 타협하여 새로 도출된 것이 바로 합(合)이다.
이 합(合)은 또다시 정(正)이 되어 정반합의 원리로 사회가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면 원수는 원수로 갚게 되어있다. 그런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원수를 갚기위해 원수에게 해를 끼치려면 그에 상응하는 피해를 또다시 입게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수 때문에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합(合), 즉 사랑으로 갚으면 상대방도 감사함과 사랑으로 보답하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가 선순환으로 바뀌게 된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뒤바꾼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정일권 전국회의장이다. 그는 자기를 비난하는 야당의원을 공사석에서 수차례 칭찬하였다고 한다. 결국 그 야당의원은 비난을 덜하게 되고 오히려 태도가 바뀌어 좋은 말을 해주더라는 것이다. 정의장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정반합의 원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최장수 국회의장과 총리를 하였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정반합의 원리’는 자연스러운 사회의 법칙이다. 사람들이 이 법칙을 깨닫고 정일권 전총리처럼 슬기롭게 역이용하면 본인은 물론 사회가 보다 더 평화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전화위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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