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한국 현대미술 원로화가인 이우환 화백 작품 위조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작품 60여 점이 위조됐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조품에는 이 화백이 쓰지 않는 물감이 쓰였고, 덧칠의 흔적도 다수 발견됐다.

이 작가 측에서는 작가 감정 이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결과가 발표된 것에 유감을 표현하면서 직접 작품을 살펴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작가의 위작으로 추정됐던 작품들에 대한 국제미술과학연구소, 국과수 등의 감정 결과 진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은 위작으로 여겨져 압수된 일반인 구매 4점, 유통·판매책 보관 8점, 경매 의뢰 1점 등 모두 13점에 대한 감정을 진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는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과학 감정 결과 압수된 그림들이 모조품에 가깝다고 결론 냈다.

국과수가 국내 유명 미술관에 전시·보관된 이 화백의 진품 6점과 압수품 13점을 비교 분석한 결과 위조품의 경우 개별 그림마다 물감의 성분과 화법이 상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과수는 "1973년부터 1980년에 걸쳐 제작된 기준 감정물의 물감이 서로 유사하고 캔버스의 제작 기법이 동일한 패턴을 따르고 있으나 증거물에서는 기준 감정물과 유사한 작품이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에 따르면 이 작가의 진품과 위작 사이에는 물감 등에 사용된 원소 비중이 달랐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밝히면서 진품에 납과 아연 성분이 두 배 이상 많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제미술과학연구소와 민간 감정위원회, 한국미술감평원도 압수된 그림 모두 위작으로 판정했다.

이들 기관의 안목 감정 결과 작품들에는 인위적인 덧칠 흔적이 있었다. 또 제작 시기가 서로 다른 질료가 혼용됐으며 작품 표면의 질감과 화면의 구도, 점과 선의 방향성 등이 이 작가의 것과 달랐다.

▲ 이우환 화백
사서명위조 혐의로 구속 중인 위조 총책 현모(66)씨와 같은 혐의로 입건돼 수사 중인 위작 화가 B(40)씨는 지난 2012년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이 작가의 그림 50여점을 위조해 유통시켰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현씨는 위작을 유통책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약 2억45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고 그에게 고용돼 실제로 그림을 그린 B씨는 64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다만 현씨와 B씨는 압수품 13점 가운데 일부만 자신들이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일본 경찰과 공조해 지난 4월18일 현씨를 이 작가의 작품을 위작한 혐의로 검거했고 5월10일 신병을 인도받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B씨는 채색 작업을 주로 하던 사람으로 공방을 만들어 전문적인 작품 위조를 했던 정황은 없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위작으로 판명된 일반인 구입 작품 4점은 평균 4억원에 팔렸다. 현씨와 B씨는 위작을 제작하기 위해 온라인과 도록을 통해 이 작가의 화풍을 학습했고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면서 화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경찰은 현씨가 국내에 유통시킨 위작을 추가로 확보하는 한편 이 작가의 감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변호인과 작가 감정에 대한 조율을 진행 중이다.

이 작가 측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위작을 직접 감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작가 측 변호인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날짜를 잡아 직접 확인할 것"이라며 "처음부터 생존 작가가 있으니 그림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보여 달라는 주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온 뒤에야 작가에게 보여주겠다고 하는 절차상의 문제가 다소 유감"이라며 "수사가 빠른 시일 내에 종결돼 의혹이 해소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2~3년 전부터 이 작가의 위작이 유통되고 있다는 첩보에 근거 수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위작을 유통한 화랑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앞서 현씨는 1991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위조한 혐의로 서명위조 및 동행사, 저작권법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1995년에는 단원 김홍도 등 조선시대 유명화가들의 가짜 그림을 제작, 판매한 혐의로 적발됐다.

위작을 유통한 화랑 대표 등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위작을 사들인 뒤 감정사와 짜고 가짜 감정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작가는 1936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일본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두는 모노크롬(monochrome)풍의 그림을 그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박서보, 서승원, 정창석, 윤형근 등의 작가와 함께 한국 단색화가의 뿌리처럼 여겨진다. 이 작가의 그림은 모조품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위작 판정이 나면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그는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니혼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부터 1991년까지 도쿄 타마미술대학 교수로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남았다.

이 작가는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 권위 있는 국제전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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