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3년전 부인과 사별한 이모(66)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우울하다. 최근 지병으로 일을 그만두게 됐고 자녀들을 만나는 일은 '연례행사'가 돼 버렸다. 이씨는 울적한 마음을 마땅히 해소할 곳도 없어 TV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모(83)씨는 지난 1월 춘천시 한 주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독거노인인 김씨는 평소 암투병을 하며 지인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수술비 마련을 위해 수년간 폐지줍기를 하면서 힘겨운 생활을 해왔지만 내내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김씨의 집에는 폐지를 모아 번 얼마간의 현금과 돼지저금통이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병을 이겨낼 자신도, 치료할 돈도 없다'는 내용의 유서가 함께 발견됐다.’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했으나 노인 10명 중 3명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만큼 삶에 허덕이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13년 613만7702명, 2014년 638만5559명, 지난해 662만412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한다.

이 중 배우자와 사별하고 자녀와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은 144만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증가추세라면 독거노인 수가 2035년에는 343만여명으로 전체 가구 중 15.4%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노인들 대부분은 자신의 존재가 자식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4 노인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3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 43.7%가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우울증 환자의 41%에 달하는 수준으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노인들의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 우울증의 원인으로 경제적 빈곤, 질병, 소외감 등을 꼽았다. 노화로 인해 신체 기능이 떨어져 여러 질병이 생기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스스로 '쓸모 없다'고 생각해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사별한 뒤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노인 절반이 빈곤층…'한계상황'에서 극단적 선택

대한민국은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지 오래다.

경제적 빈곤은 노인 우울증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 빈곤율인 11%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이 빈곤상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퇴 후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빚에 의존하는 처지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여렵사리 일자리를 구한 노인들의 상황도 열악하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노인근로자들은 하루 평균 12.9시간 노동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보다 오래 일하지만 시간당 임금은 5457원으로 최저임금 5580원보다 낮게 나타났다.

일자리도 85.4%가 경비와 청소, 가사도우미, 운전사 등 단순 노무직에 집중됐다. 게다가 휴가나 재해보상 등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상황이면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들에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궁핍과 외로움으로 내몰린 한계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진다.

2014년 통계청이 65세이상 노인 11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9%가 자살을 생각했고 이중 12.5%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의 6배인 인구 10만명당 55.5명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정부-지자체, 노인 지원책 점차 강화

정부는 독거노인들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 시범 사업을 벌여 은둔형·활동제한형 노인이나 우울증을 앓는 노인에게 1명 이상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실제로 이 사업에 참여한 노인들의 우울감이 낮아져 사회적 관계 유지가 노인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독사 방지를 위해 생활관리사가 방문이나 전화를 통해 독거노인 안부를 확인하는 '노인돌봄 기본서비스'와, 집에 화재감지기·출입감지장치 등 첨단 장비와 기술을 적용해 안전을 관리하는 '독거노인 응급안전서비스' 등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지차제도 일자리 마련 등 노인의 생활 안정을 돕는 데 힘쓰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해 2만여개의 노인 일자리를 제공했고 올해도 3000개를 추가해 2만3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대전시와 공주시도 올해 어린이집 보육아동 승하차 안전 지도, 향토 문화재 해설 등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매월 전문 강사를 초빙해 자살예방, 자산관리, 자원봉사, 건강관리 등의 교육을 실시하고 안전교육도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에서 노인복지를 위한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현숙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관련 상담을 전담하는 요원을 배치하는 등 노인 정신보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인들이 다양한 취미와 문화, 예술, 봉사활동 등 좋은 휴식으로 사회관계망을 넓힐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독거·빈곤 노인의 증가와 우울증에 대한 소극적 대처가 노인 자살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노인에 대한 경제적 안전망 강화와 함께 일상에서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문화와 여건을 조성하는 지역사회의 정책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노인들 스스로 우울증에 대해 숨기지 말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노인들 대부분이 '나이 들면 즐겁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오해와 편견으로 제대로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신과 약물치료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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