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 지난달 28일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망한 김 모(19)군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이미영 기자]연이어 터지고 있는 안전사고와 맞물려 '안전 불감증'에 대한 지적이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서 지켜야할 안전 수칙과 매뉴얼이 있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작업자 사망 사고, 경기 남양주 지하철 공사 현장 폭발 사고 등에서도 '안전 규정 미준수'가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마련된 안전 규정은 작업 준비부터 종료까지 철저한 준수가 요구된다. 하지만 막상 발생한 인명 사고 등을 살펴보면 이런 규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사례가 많다.

서울메트로는 지난 2013년 1월 발생한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점검 시 2인1조로 출동하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하라고 협력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29일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번 구의역 사고 등에서 이 같은 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청 근로자 숨통 조이는 '용역·외주 공화국'

육체노동을 근간으로 한 수많은 일터가 근로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두려운 현장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다. 특히 더럽고 위험한 일에 주로 투입되는 하청업체 근로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매년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단지 안전불감증 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자 사망과 같은 후진국형 사고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서울시가 외주업체의 직영화를 검토하는 내용의 때 늦은 대책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허울 뿐이란 지적이 상당하다.

◇'제 할 일도 남 준다' 무분별한 외주화에 안전 위협

김모(19)씨는 지난달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홀로 점검에 나섰다가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취직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변을 당한 김씨는 서울메트로의 정비용역업체 은성PSD 소속 직원이다. 즉 하청근로자다.

비슷한 사고는 이미 몇 차례 더 있었다. 2015년 강남역에서, 2013년에는 성수역에서 각각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근로자가 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2013년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는 하청업체가 시설물 점검과 보수를 할 때 '2인1조'로 안전요원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작업 매뉴얼을 보완했다고 밝혔지만 2015년 강남역에서 사망한 노동자도 홀로 수리하던 중이었다. 때문에 서울메트로는 하청근로자 개인의 부주의로 사고 책임을 돌렸다. 이 뻔한 레퍼토리는 유가족에게 또 한번의 생채기를 남겼다.

김씨와 같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하청근로자 비율은 매년 높아져 올해 상반기의 경우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중 40.2%에 달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만들어 낸 안전 수칙과 매뉴얼이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인데 그 요인으로 '위험의 외주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꼽힌다.

원청업체가 비용을 절감하려고 직영 인력이 아닌 영세한 하청업체에 관리 책임을 떠넘기고 하청업체가 다시 외주에 일감을 주는 다단계 구조로 돼 있다보니 매뉴얼을 갖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용 불안에 내몰리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많이 양산되면 될수록 산업 재해는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현재 우리나라 임시직 비율은 2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번째로 높다. 우리보다 높은 임시직 비율을 가진 나라는 스페인(24%)과 폴란드(28.4%), 칠레(29.2%) 뿐이다.

2008∼2013년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은 근로자 10만명당 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터키(15명)와 멕시코(10명)에 이어 세번째로 많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시민이나 근로자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상시적 업무는 하청을 주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지 않고서는 '언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최저입찰제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뿌리뽑지 않고서는 산재를 줄일 수 없다"면서 "세월호 참사 후 19대 국회에 제안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도 재검토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갑을 관계로 비화된 시장 거래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인명 피해를 불러온 기업에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이나 시장 퇴출이란 고강도 벌칙제가 도입돼야 실제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서울시 잇단 뒷북대책…"알맹이 없다" 지적도

정부와 서울시는 뒤늦게 용역·외주 공화국 오명 벗기에 나섰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려는 것이다.

하지만 외양간을 고치는 시늉만 할 뿐 정작 달라진 것은 없다고 시민·노동단체들은 꼬집는다. 특히 서울시가 7일 내놓은 '업무 외주화의 직영 전환' 대책에 의구심을 품는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직영화의 표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규직화가 아닌 무기계약직의 직영화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병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은 "업무의 외주화를 철회하고 직영화로 전환해 정규직 안전인력을 확보하라는 노조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면서도 "구체적인 인력 충원과 전관채용(메피아) 철폐 방안 등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인력만으로만 다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잇단 하청근로자 사고에 때 놓친 원청업체 특별감독에 나선 상태다.

19대 국회에 제출됐으나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된 원청업체의 산재 예방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다시금 입법예고했다.

외근중 구의역에 들러 추모글을 남겼던 시민 김성태(43)씨는 "그간 사고가 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내놓은 대책들은 허상이었다"면서 "근로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당대우 언제까지…'열정페이' 시달리는 청년 63만명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김모(25·여)씨는 올해 초 한 의류 디자인 회사 인턴에 지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지만 정작 실무와는 무관한 청소, 복사 등 허드렛일만 도맡아 했다.

하루 9시간 근무에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했지만 김씨가 받은 월급은 고작 40만원. 적은 월급에 당황한 김씨가 회사에 항의하자 사측은 "무급인턴도 많은데 40만원도 감사히 여기라"며 오히려 생색을 냈다.

청년들이 작업 현장에서 부당대우를 당하는 사례들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목숩을 잃은 김모(19)군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용역업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월 144만원만 받아야 했다. 특히 김군의 가방에서 발견된 컵라면은 밥먹을 시간 조차 없이 업무에 시달려야했던 그의 각박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취업이 바늘 구멍 뚫기나 다름 없는 청년실업의 시대. 다급한 청년들의 절박함을 빌미로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이른바 '열정페이'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청년 열정페이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청년이 63만5000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청년임금 근로자의 17%로 6명 중 1명꼴이다. 2011년 44만9000명에서 불과 4년만에 약 20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열정페이 노동자가 받은 시급은 4515원으로 당시 법정최저임금인 5580원보다 1000원 이상 적었고, 일반 청년노동자가 받는 시급 1만741원의 42% 수준에 불과했다. 월급으로 환산해 보면 일반 청년노동자가 한달 185만원을 받은 반면 열정페이 청년은 71만원만 받고 일한 셈이다.

또 열정페이 비중은 나이가 어릴수록 컸다. 근로자 중 15~19세는 열정페이 비중이 2011년 51.7%에서 지난해 57.6%로 5.9% 포인트, 20~24세는 5.7% 포인트, 25~29세는 1.7% 포인트씩 각각 상승했다.

이는 청년들의 열정과 일자리를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 착취의 씁쓸한 현주소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열정페이 노동자가 주로 15~19세 중·고교생과 20~24세의 대학생층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다수의 청년이 인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정페이를 강요받지만 '스펙쌓기'를 위해 참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해마다 열정페이 행태를 단절하겠다며 여러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최저임금법 위반을 이유로 처벌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열정페이 문제 등을 상담하는 청소년 근로권익센터 운영을 강화하고 익명 제보 게시판 등을 운영키로 했다.

또 인턴 보호를 위해 인턴 기간, 임금 내역, 업무 내용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업·대학·학생 등에게 보급했다. 법 위반 의심사업장에 대해서는 취약사업장 일제점검, 인턴 다수고용 사업장 기획감독에 포함해 법 위반이 확인되면 강력하게 제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적발돼도 대부분 행정지도나 시정조치에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로감독관이 대부분 체불임금의 70~80%만 돌려주는 선에서 합의를 유도하고 기소해도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사용주가 사법처리 된 경우는 전체의 2%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책 홍보에 적극 나서야 하고, 단순 경고로 그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실업난으로 취업경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청년들이 남들보다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위기감으로 열정페이를 감수하고 있다"며 "최근 구의역 사건 피해자인 김군도 야근, 휴일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식사시간조차 없었다. 기업들은 청년들의 열정을 악용해 노동착취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를 규제하고 감독해야 하는 정부가 대책 발표만 그럴듯하게 하고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유명무실한 정책"이라며 "정부는 업무 현장에서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있게 작동하도록 근로 감독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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