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비자금 조성 포작 롯데그룹 압수수색
[이미영 기자]“휴대전화는 꺼서 이리 주시고, 전부 자기 자리에 앉으세요.”

지난 10일 오전 8시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센터빌딩.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호텔롯데·롯데백화점 본사 등이 입주한 이 건물에 검찰 수사관 200여명이 들이닥쳤다. 수사관들은 각 부서별로 휴대전화를 수거한 뒤 컴퓨터 자료 복사와 책상 위 서류 수거 등을 진행했다.

검찰이 롯데그룹 신격호(94) 총괄회장 일가를 상대로 '역대급'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을 포함해 차남 신동빈(61) 회장과 장녀 신영자(74) 이사장 등을 직접 겨냥한 압수수색에 340여명을 투입했고 트럭 7대 분량의 압수물을 확보했다.

1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전날 신 회장 자택과 그룹 정책본부, 계열사 6곳, 임원 주거지 등 모두 17곳을 압수수색하면서 240명에 달하는 인력을 동원했다. 이는 서울중앙지검 전체 수사 인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검찰은 지난 2일 신 이사장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할 때도 100명을 투입했다. 롯데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에만 34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동원된 것이다.  검찰은 특히 3차장 산하 인지부서 세 곳을 수사에 투입했다.

롯데그룹 비자금 등 의혹은 특수4부(부장검사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손영배)가 맡고 있다. 신 이사장의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가 전담하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도 상당한 분량인 것으로 파악된다. 전날 15시간에 걸쳐 진행한 압수수색에서만 트럭으로 7대 분량의 서류 등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격호(95) 총괄회장과 신동빈(61) 회장은 이날 압수수색을 당하는 화는 피했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의 전격 압수수색 등 ‘검찰일정’을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와 동시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주도 면밀한 행보를 보여 이미 검찰수사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신격호(94) 총괄회장이 입원하고 신동빈(61) 회장은 해외 출장을 떠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으로 보인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롯데그룹 정책본부는 검찰 압수수색 직후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롯데그룹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다른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정책본부만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이 즉시 변호사를 선임한 정책본부는 서류상 롯데쇼핑 소속이나 실제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처럼 그룹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정책본부 인원은 400여명으로 본부장은 이인원(69) 롯데그룹 부회장이 맡고 있다. 정책본부는 본부장 밑으로 운영실·지원실·비서실·인사실·개선실·비전전략실·커뮤니케이션실 등 7개의 실과 예하 부서로 구성됐다.

특히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황각규(61) 운영실장은 그룹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수합병(M&A)을 총괄하고 있다.

정책본부는 그간 조직구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난해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역할이 일부 파악됐다.

대형로펌 소속 한 변호사는 "검찰 압수수색이 있던 날 롯데그룹이 정책본부라는 부서를 방어하기 위해 국내 최대 로펌을 변호사로 선임했다는 말에 놀랐다"며 "마치 검찰 수사를 기다린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뒷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총수 일가도 검찰 수사에 사전 대응한 것처럼 움직였다.

신 총괄회장은 압수수색 하루 전인 지난 9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신 총괄회장은 고열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아들인 신 회장은 지난 7일 출국해 현재 멕시코 출장 중이다.

신 총괄회장 부자는 13년 전 소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때도 비자금 조성 의혹을 사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당시 일본에 머물며 검찰 출석요구에 불응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롯데그룹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검찰 동향을 살폈던 거 같다"며 "검찰 수사를 앞두고 민감한 자료를 인멸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편 롯데그룹 측은 전면 압수수색에 대해 입장을 내고 “당면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때라 몹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진행 중인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최대한 정상적인 경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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