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국책금융기관과 대기업체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일 년 동안만 5조원대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이 그 전부터 이미 적자를 기록했으나 분식회계로 이를 감춰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어제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감사 결과의 대우조선해양 부실 실상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대우조선은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은 ‘묻지마 투자’로 1조2000여억원의 손실을 냈다. 2013∼2014년 1조5000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이를 근거로 임직원이 2000억원 이상의 성과급을 받았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9월 말 대우조선해양은 직원 1명당 평균 946만 원의 격려금을 지급하겠다는 단체교섭안을 KDB산업은행 경영관리단에 보고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상반기 3조 원이 넘는 영업 손실이 발생한 상황이라 대주주인 산은은 “분위기상 적절치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직접 나섰고, 이를 보고받은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같은 해 10월 정부로부터 4조20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기로 한 대우조선은 직원들에게 총 877억 원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대우조선은 2013, 2014년에도 회계장부를 조작해 만든 영업이익을 근거로 임원과 직원들에게 각각 65억 원, 1984억 원을 건네며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더욱 한심한 것은 대우조선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출자회사 재무분석시스템을 구축하고도 대우조선 재무상태를 점검하지 않아 경영 부실에 적기 대응할 기회를 놓쳤다. 산은은 2013년부터 대우조선에 대해 ‘재무 이상치 분석시스템’을 활용한 재무 상태 분석을 해야 했음에도 한 번도 이를 실시하지 않았다.

재무 이상치 분석 시스템은 과거 재무제표와 동종 업계 재무지표 등을 토대로 개별 기업에 대한 재무자료를 분석해 분식회계를 적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지난 1월15일 감사원으로부터 해당 내용을 통보 받은 금융감독원은 현재 감리를 진행 중이다.

위의 사례는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국책은행의 출자회사 관리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 예다.

산은은 대우조선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뒀지만 제대로 ‘경고음’을 울린 시스템은 하나도 없었다. 산은은 2011년 국회의 지적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진행했다. 산은은 당시 “해양플랜트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곧 현금 흐름이 나아질 것”이라는 대우조선 경영진의 말만 듣고 여신 한도를 계속 높였고, 결국 적절한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다.

컨설팅에 대한 후속 조치도 ‘빛 좋은 개살구’ 수준이었다. 당시 대우조선은 심의기구를 만들어 20억 달러 이상의 해양플랜트 수주 계약에 대해 사전 심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대우조선이 직전 2년간 수주한 계약 중에 20억 달러를 초과한 건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었지만 산은은 문제 제기 없이 이를 승인했다. 이후 대우조선이 맺은 해양플랜트 사업 13건 가운데 12건이 사전 심의를 거치지 않았고, 결국 1조3000억 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했다.

산은의 관리 감독이 허술한 사이 대우조선해양은 부실을 털어내는 것보다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렸다. 대우조선은 2008년 상조회사인 대우조선해양상조, 2009년 풍력업체인 ‘드윈드’ 등 조선업과는 관련 없는 자회사를 늘려나갔고, 오만의 선상호텔 프로젝트 등 무리한 투자를 계속했다. 감사원 측은 “대우조선의 자회사 32개 가운데 17개는 조선업과 관련 없거나 타당성이 부족한 자회사였고, 이들에 대한 투자로 9021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지적했다. 이사회에 참여하는 산은 출신 임원들은 주요 사업에 대한 모든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면서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산은은 다른 출자회사에 대해서도 대주주로서 ‘갑질’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산은은 출자전환기업에 경영관리단을 파견하면서 다른 채권은행들과 달리 파견자들의 주거비용을 해당 기업에 떠넘겼다. 전남 해남에 경영관리단으로 파견된 산은 직원 4명은 교통비 명목으로 해당 업체로부터 570만 원을 받았다. 단합대회를 이유로 유흥업소에서 한 번에 380만 원을 결제하거나 골프 비용을 업무추진비로 청구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부당하게 집행된 업무추진비는 2억3600만 원에 달했다.

산은은 이날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결과를 수용해 책임자를 문책하고 지적 사항도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사로 인해 현재 진행 중인 해운·조선업종의 구조조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의 격려금 지급을 허용하는 등 자회사 관리에 태만했다는 이유로 금융위에 인사자료가 통보된 A 임원이 현재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의 구조조정을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는 실무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진 조치들에 대해 일일이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구조조정에 나서려고 하겠느냐”며 “산은 구조조정 라인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마당에 향후 구조조정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차제에 산업은행 등 부실을 방조한 국책은행 관계자들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은 16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대규모 부실과 분식회계 의혹 등을 사실상 방관했다는 감사원 감사결과와 관련, 한목소리로 정부와 산은을 비난했다.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만약에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우리당 의원들이 지적한 내용을 정부가 조금만 신경 썼다면 대우조선해양이나 산업은행에서 이뤄진 부정부패, 부실, 경영관리 이런 것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