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이 지난 14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으로부터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후 처음으로 심경을 밝혔다.
19일 대작(代作) 그림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겸 화가 조영남(71)이 그동안 사회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대작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인 것. 지난 14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으로부터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후 심경을 밝히기는 처음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부산에서 열린 '쎄시봉 콘서트'에서 공연 도중 90도로 사죄 인사를 했지만 그간 침묵해왔다.
조영남은 휴일인 이날 강남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지난 한 달 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며 "이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게 미안함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건 초기 조영남이 한 발언은 미술계에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는 대작에 참여했다고 주장한 무명화가 송모 씨에 대해 "송씨는 조수이며, 조수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말해 미술계의 반발을 불렀다.
이에 대한민국 범 미술인, 11개 미술단체연합 협회(대표 신제남)는 "수십만 예술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조영남을 구속해 엄중하게 처벌하라."며 지난 14일 강원 속초시 춘천지방검찰청 속초지청에서 조씨를 피고소인으로 하는 고소장과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5만 미술인들의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시작했다.
한 미술 평론가도 "조씨가 '앤디 워홀 팩토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워홀의 대량생산 방식은 그가 표방하는 예술 철학"이라며 "조씨의 작품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회화인데 워홀과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씨가 유명 연예인이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건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거침없는 성격의 조씨 이미지 때문에 이성적으로 작품 제작 과정을 살펴보지 않고 무조건 비난하고 질책하는 듯하다"고 했다.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미술계에선 조씨를 작가로 보지 않는다"면서 "사기죄라기보다 (대작 화가에게 너무 적은 돈을 주고 일을 맡긴) '열정 페이'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신의 심경도 이날 털어놨다
조영남은 "나는 화투를 소재로 하는 팝 아티스트"라며 "관행이라고 말한 것은 미술계에 누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업기를 접하면서 나 스스로 해석하고 믿어온 방식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본의 아니게 미술계에 몸담은 분들께 상처를 입히게 돼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그는 첫 공판 기일이 잡히면 법정에 선다.
공소 사실은 2011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송씨 등 대작 화가 2명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가벼운 덧칠 작업을 해 판매한 혐의다. 검찰은 조영남이 대작 그림을 20명에게 26점을 팔아 1억8천350만원을 챙겼다고 봤다.
이에 대해서도 조영남은 "곧 재판을 앞둔 처지여서 공소 내용과 관련해 상세하게 말하기 어렵다"며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조영남 화투…‘사기냐? 아니냐?’
하지만 조씨의 사기죄 여부에 관련해서 법조계의 시각이 엇갈린다.
검찰은 "조씨가 스스로 화가라고 지칭해왔고, 미술 작품을 거래할 때는 그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가 사고파는 데 중요한 요소인데 조씨는 대작 그림이라는 걸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죄"라고 밝혔다. 검찰은 조씨가 구매자들을 적극적으로 속인 것은 아니더라도 '대작 화가들이 그림 대부분을 그렸고, 나는 덧칠을 하거나 사인만 했다'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대작 화가인 송씨 등은 내 조수(助手)'라는 조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송씨 등이 독자적으로 그림을 완성해 건네줬던 만큼 대작 화가들이 조씨의 조수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작품 대부분을 완성한 대작 화가들은 조수가 아니라 '저작권자'라고 봐야 맞는다는 것이다. 법률상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만으로는 저작권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미술계의 '대작 행위'에 대해 검찰이 처음으로 사기죄를 적용하면서 형사처벌의 잣대를 들이댄 데다, 명확한 사기 의도가 있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 등을 들어 향후 공판에서 법리 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