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지난 23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앞 시민 50여명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앞에선 앞치마를 두른 한 남자가 엎드린 여자 목에 걸린 줄을 끌어당겼다. 확성기에는 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살려주세요"라고 연신 외쳤다.

중복(中伏)을 4일 앞둔 이날 동물보호단체 프리코리안독스(Free Korean Dogs)와 희망의 마법사가 개·고양이 식용을 반대하는 캠페인 현장의 모습이다.

같은 날 부산 강서구의 개 도살장.

강변에 인접해 있는 개 도살장 내부에는 철제 케이지 30여 개가 놓여 있었다. 각 케이지 안에 있는 2∼3마리의 덩치 큰 개들이 갇혀있었다.

모두 50∼60마리의 개들이 사람을 보더니 맹렬하게 짖어댔다.

철제 케이지를 지나 실제 도살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들어가자 뽑힌 개털을 담은 포대 수십 개가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바닥 곳곳에는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어 바로 몇 시간 전에도 도살이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말라붙은 핏물 자국은 바로 옆 강변까지 이어져 있어 핏물이 정화시설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도살이 이뤄지는 공간 내에도 철제 케이지 3개가 놓여 있었다. 이 케이지 안에는 도살을 앞둔 개 5마리가 갇혀있었다.

이 케이지는 밖에 놓인 케이지와는 달리 파란 가림막이 덮여 있었다.

27일 불법적인 방법으로 개 도살이 이뤄진다는 제보를 입수한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과 부산 강서구청이 이곳 도살장을 기습 방문한 당시의 처참한 모습이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방관"

우리 민족은 예부터 복날 더위를 피하고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탕을 끓여 먹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보신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고기로 몸보신하는 문화로 삼복(三伏) 기간에는 많은 견공(犬公)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식용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사진작가 'E.K 박'씨는 지난해 7월 캐나다에 프리코리안독스를 설립했다. 단체에 따르면 매년 한국에서 도살되는 개는 약 200만명. 이들은 "개고기산업에 대한 규제가 없어 매년 개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날 캠페인도 그 일환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행사 소식을 알게 된 시민들은 하나둘 일민미술관 앞으로 모여 '개는 우리 친구다' '누가 먹었어 내 친구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일부는 반려견을 데리고 와 함께하기도 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개·고양이 식용을 방관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반려동물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어요. 반려동물들이 더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개·고양이 식용 금지법을 제정하고 불법 개 농장을 철거해야 합니다."

 
◇암묵적인 처참한 ‘개 도살’

이날 경찰과 함께 단속 현장을 찾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동물 학대 방지법에는 다른 동물이 지켜보는 앞에서 도살하는 것을 학대로 규정하고 있어 법을 피하려고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면서 "하지만 같은 공간 내에서 도살이 이뤄져 소리가 잘 들리고, 가림막이 제대로 설치돼있지 않아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이 도살장이 동물을 감전시켜 죽이는 것을 금지한 동물 학대방지법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이 도살장에서는 덩치가 작은 개는 전기 감전으로, 큰 개는 망치로 머리를 내리쳐 죽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화조나 분뇨처리시설 등 제대로 된 위생시설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무허가 건물에서 도축한 사실도 구 관계자가 확인했다.

김 대표는 이 도살장이 그동안 부산에서 발견됐던 다른 개 도살장과 비교해 가장 많은 수의 개를 단시간 내 처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름이면 5일 마다 50여 마리의 개들이 이 도살장을 거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라도와 강원도 등지 시골 장터에서 개를 사와 일부는 북구 구포시장에 개를 그대로 넘기고, 나머지는 도축해서 부산ㆍ경남지역에 공급하고 있었다.

도살된 개들은 마리당 30만∼50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도살장 주인 A씨는 "20살부터 32년째 이 업을 해오고 있는데 배운 게 이것뿐이어서 다른 일도 못 한다"면서 "이 일 하는 사람 중에 벌금을 피할 사람은 없다. 다만 예전보다 도살 물량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등 어려운 처지이니 벌금을 적게 맞을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읍소했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도살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동안 단속이 되지 않았던 점도 문제"면서 "해당 도살장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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