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식집이 많았던 1972년 '견지동' 모습
[김홍배 기자]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고 하루가 지난 29일, 지난 20여 년간 정부부처 공무원과 기자들을 상대해 온 한 A 대기업 홍보이사는 업무 관계자 60여 명에게 추석 선물을 보내기 로 했다고 말했다. 선물은 30만원대의 고급 한우세트.

그는 “추석에 선물을 보내도 김영란법 시행 전이라 괜찮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해를 구하고 미리 선물을 보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명절 선물이라는 마음에 평소보다 비싼 가격의 선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매년 명절마다 볼 수 있었던 이러한 ‘관행’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돼 묻기도

이어 그는 “우리같이 자주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건 식사비용 상한액 3만원”이라며“업무상 관계자와의 식사는 대부분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당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다“고 덧 붙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래서일까 식사비 상한선을 3만원으로 규제하는 '김영란법'에 맞춰 기업에서는 속칭 '영란식당' 리스트를 만드는가 하면, 식당들은 '영란메뉴'를 내는 등 대응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기자가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해산물전문식당에서 내놓은 ‘영란세트’는 회와 국물요리로 구성된 3인분 메뉴를 내놓았다. 이 집은 대기업 홍보 담당자와 주변 신문사 기자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격은 7만원으로, 세 명이서 영란세트를 주문한 뒤 소주 3~4병에 공깃밥까지 먹어도 9만원을 넘지 않는다.

또 근처 한00 한우전문점에선 ‘김영란 클린세트 메뉴’를 출시했다. 점심엔 한우 120g과 된장찌개가 제공되는 2만9500원짜리 메뉴와 4인 기준 한우 480g과 소주 2병, 식사가 제공되는 11만9000원짜리 메뉴가 대표적이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기업의 대관 담당 부서는 광화문 일대와 여의도 등에 위치한 3만원 미만 메뉴가 있는 맛집 리스트를 새로 정리했다고 한다. 이 리스트에는 광화문에서 샤부샤부 정식을 판매하는 '일품당'과 1만원대의 해장국을 판매하는 종로 '청진옥', 초계탕과 냉면 등으로 유명한 을지로 '평래옥' 등이 올라 있다. 한정식집이나 한우를 주 메뉴로 하는 고깃집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기업 담당자는 "윗분들은 방이 마련돼 있는 조용한 식당을 좋아하는데, 3만원 미만으로 추리다 보니 그런 식당을 찾기 어려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 비서 전문 교육기관이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에는 '김영란법 접대 가능 식당'이라는 제목으로 도봉구의 '대문 한정식'과 강북구 우이동 '옥류헌'(2만2000원), 강남·여의도 등에 지점이 있는 식당 '진진바라'(점심특선 2만5000원) 등을 소개했다.

이런 움직임을 포착한 식당·호텔들은 서둘러 가격을 일부 낮춘 메뉴들을 내놓고 있다. 3만~4만원대의 메뉴를 보유하고 있는 중고가 식당들은 메뉴 구성을 단출하게 줄여 가격을 내린 '영란메뉴'를 구성했다.

정부청사가 모여 있는 세종시에서 공무원들과 기자들이 자주 찾던 식당 '봉피양'에는 2만8000원짜리 한우 너비아니 도시락 등 '김영란 맞춤 도시락'이 나왔다.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은 일식당 '?미'와 양식당 '더비스트로'에서 각각 3만원의 초밥 세트·메로간장구이 정식, 스테이크 세트를 새로 구성해 선보일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김영란법'을 활용해 적극적인 홍보효과를 누리는 식당도 있다.

저녁에 3만원 미만 메뉴가 없었던 남도음식점 '해우리'는 김영란법 합헌 결정에 맞춰 2만9000원짜리 저녁 정식 메뉴를 새로 선보이고 이를 홍보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시사플러스와 통화에서 “가격이 비싼 고급 한정식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중저가 음식점으로 업종을 바꾸면서 전반적으로도 상권에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며 “접대 문화가 큰 전화점이 될 것으로 주변 상권도 저렴한 대중 음식점 중심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견지동에서 만난 한정식집 한 종업원의 말이다 "옆집도 문 닫았지만 장사들이 여기 거의 안되요. 6월 말로 문 닫았어요. 타격은 사실이에요"

 이제 한정식 집이 즐비하던 '견지동 한정식'도 역사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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