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시작되는 절기 '입추(立秋)'인 7일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날리고 있다.
[신소희 기자]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도시인들은 에어컨 없이는 잠 못 이룰 정도로 심한 열대야와도 맞서야 한다.

"너무 더워서 요리를 하려고 하면 먹기도 전에 지쳐버린다"는 것이 마포의 한 마트에서 만난 이 모씨42여)의 말이다.

이씨는 “집 근처 마트에서 깜짝 세일하는 반찬이나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는 곰국, 순두부찌개 등을 사서 저녁 시간이 되면 힘들일 것 없이 '뚝딱' 상을 차려 내 놓는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덥다'고 했던가. 가장 많은 시민이 선택하는 '폭염 탈출' 방법은 이씨처럼 최대한 덜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방콕’이 좋다”

자취하는 대학원생 정모(26)씨는 아예 집 밖으로 안 나간다. 학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최근 집 밖으로 나간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정씨는 “밥은 무조건 집으로 배달시켜 먹는다. 요즘은 대형 마트 등에서 배달 서비스도 하기 때문에 빵, 간식, 우유, 생수 등도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놓는다”고 말했다.

또 직장인 이모(32)씨는 6월말 일찌감치 경기 가평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피서객이 절정으로 몰리는 7월 말~8월 초를 피하기 위해서다. 뒤늦게 휴가를 떠나는 동료·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사무실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가면 그런 마음이 금세 사라지곤 한다.

이씨는 7일 "요즘은 화장실만 가더라도 숨이 막히고 땀이 흐른다"며 "이런 날씨는 사무실이 가장 시원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같은 날씨는 남과 조금만 부딪혀도 짜증이 나 지하철에 사람이 몰리기 전에 출근하고 퇴근 시간을 피해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내린 비를 끝으로 올해 장마가 끝나면서 불볕더위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5월10일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더니 지난 2일에는 전남 목포의 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다.

지난 4일 서울은 35도를 웃돌며 첫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전국적으로 살이 타는 듯한 폭염이 계속되면서 불쾌지수 또한 80%를 웃돌고 있다. 기상청은 8월 첫 주 절정에 달한 이번 더위는 9월 중순까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에 시민들도 더위를 극복하기 위한 각종 묘안을 짜내고 있다. 특히 휴가를 미루거나 앞당겨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휴가철에는 집안과 사무실에서 더위를 극복하는 '방콕족'이 늘고 있다.

직장인 김모(38)씨는 퇴근 후 회사에서 자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아직 에어컨을 구매하지 않아 집안의 열기를 온몸으로 이겨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열대야 현상까지 자주 나타나면서 밤잠까지 설치고 있다.

김씨는 "집에 에어컨을 들이기보다는 회사 숙직실에서 이번 여름을 보낼까 고민하고 있다"며 "점심도 사무실에서 남은 동료들끼리 시켜먹는 게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자취 중인 이모(32)씨는 출근 전에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 냉동실에 넣어놓는 게 습관이 됐다. TV에서 우연히 본 더위 나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페트병과 아이스백을 몸에 대고 찬 바람을 쐬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이씨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는 페트병과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감싸 온몸으로 껴안고 있다"며 "그 상태로 선풍기를 틀면 시원하다 못해 찬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머리카락이 '삐쭉' 서는 느낌마저 든다"고 효과를 실감나게 설명했다.

결혼 3년 차 박모(34)씨는 특별한 약속이 없는 경우 금요일만 되면 아들, 아내와 함께 차로 20분 거리인 부모님 댁에서 이틀 밤을 자고 집으로 돌아온다. 전기세도 아끼고 부모님도 뵐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박씨는 "처음에는 이틀 연속 부모님 집에 있으면 아내가 낯설고 불편해할까 봐 걱정도 했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아들을 맡아줘 아내도 쉴 수 있어 좋아하고 있다"며 "한 달째 매주 부모님을 찾아뵈니 효도하는 기분마저 든다"고 만족해했다.

장모(30)씨는 여름 휴가지를 서울 도심의 호텔로 정했다. 독립된 공간에서 편안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누리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올해 여름은 홀로 호텔에서 이불을 덮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낼 계획"이라며 "더위도 날리고 휴가온 것 같은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기대가 된다"고 즐거워했다.

◇“나는 ‘외출족’이다“

특정 아르바이트에 종사하거나 이벤트 및 축제 현장을 찾아다니며 더위를 이기는 '외출족'도 있다.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임모(19)씨는 올여름 수도권 지역의 레저호텔 수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수영이 면접에 크게 도움이 됐다.

임씨는 "군대 가기 전 남는 시간 동안 할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수영장에서 일하게 됐다"며 "비록 일하는 거지만 수영장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같이 시원해진다"고 웃었다. 이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시간에 수영을 할 때는 피서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미리 라이프가드 자격증를 땄던 이모(25)씨도 해수욕장 아르바이트 중이다. 해수욕장 라이프가드 아르바이트는 짧은 근무 기간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씨는 "방학 때 짧게 근무하고도 한 달에 2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며 "올해 여름은 시원한 바다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도 변화하는 양상이다. 여기저기 볼거리 위주의 여행지를 돌아다니기보다는 시원한 쇼핑센터나 영화관 등 실내에서의 만남을 선호하는 추세다. 공포체험이나 각종 여름축제 이벤트를 골라 찾아 색다른 재미와 피서를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여행 동호회에서 만난 여성과 연애 중인 박모(33)씨는 "여자친구와 주말마다 명소를 찾아다니며 여행을 즐겼지만 요즘은 너무 더워 실내로 데이트 장소를 바꿨다"며 "최근에는 쇼핑센터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 '부산행'을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가구, 침대 등 신혼살림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전업주부 한모(32)씨는 남편,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공포체험을 종종 시도한다. 한씨는 "방학을 맞은 딸과 어디를 갈까 하다가 날이 너무 더워 공포체험 현장에 갔다"며 "딸이 무서워하면서도 스릴을 좋아해 다른 공포체험 장소도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열치열족’이다”

어차피 더워서 잠 못 이룰 이 밤을 운동으로 이겨내겠다는 것이다.

회사원 박모(33)씨 자취방에는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로 더위를 해결해야 하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효과가 없다. 그래서 박 씨는 퇴근하고서 매일 밤 자전거를 타고 후텁지근한 밤공기를 가른다.

박씨는 "한강공원에 나가 15∼20㎞ 정도를 달리고서 집에 돌아와 냉수를 마시고 샤워를 하면 선풍기만 틀어도 잠이 잘 오더라"라고 말했다.

연인 사이인 박모(32)씨와 이모(35)씨는 주말에 여름맞이 축제를 만끽한다. 박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평창 더위사냥 축제를 다녀왔다"며 "시원한 동굴 체험도 하고 흐르는 물에 발도 담그니 여름이 멀어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무더위 속에 오히려 찜질방과 사우나를 향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전형적인 '이열치열'의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보겠다는 발상이다.

최모(29)씨는 "부모님과 함께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가서 땀을 빼고 식혜 한 잔을 들이켜면 여름이 싹 가시는 느낌"이라며 "찜질방과 사우나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결 같아 계절을 가늠할 수 없다"고 나름의 예찬론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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