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호 외치는 재능교육 노조원들
[신소희 기자] '학습지 교사'라고 하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찾는 모습이 떠오른다. 집에 온 학습지 교사는 30~40분 머물며 수업을 진행하고 돌아간다.

소비자인 학생과 부모의 눈에 보이는 학습지 교사의 업무는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게 되는 밝은 모습과 달리 학습지 교사 대부분은 가혹한 근무환경에 내몰려 있다. 하루 12시간에 가까운 근로시간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가 아닌 존재가 학습지 교사다.

◇쇠퇴하는 학습지 시장…교사, 40대·경력단절 여성이 대부분

학습지 시장은 교원, 대교, 웅진 등이 '빅3' 업체로 불린다. 재능까지 포함해 '빅4'로 통하기도 한다. 이들 4개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약 70%에 달한다.

학습지 시장은 2009년 최고 매출을 기점으로 이후 지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1위 대교의 경우 2011년 매출 932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8695억원, 2013년에는 8395억원으로 줄어들었고, 영업이익의 경우 2011년 611억원에서 2013년 317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시적인 후퇴가 아니라고 본다.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본격적으로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학습지 시장의 주 고객층인 중등교육 인구 수(중1∼고3)는 2009년 428만 명을 정점으로 연평균 3% 이상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중1∼고3 인구는 2023년 276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학습지 시장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학습지 교사를 하는 사람들은 몇명 정도일까. 학습지 교사의 규모를 구체적으로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현재 표준직업분류의 분류만으로는 자영업자 중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구별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1년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사관계학회에 의뢰해 펴낸 '특수형태업무종사자 실태조사'는 학습지교사의 숫자를 6만1400명으로 추정했다. 업체별로 보면 구몬과 빨간펜으로 유명한 교원이 2만5000여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대교 1만2000명, 웅진씽크빅 8000명, 재능교육 3100여명이다. 학습지 업계에서는 '빅4' 외에도 중소 규모 학습지 교사들을 포함해 약 10만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의 연령은 대부분 40대다. 학습지 교사가 되는데 4년제 대졸 이상의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20대가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버티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20대의 경우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재 학습지 교사의 대부분은 40대 여성이 채우는데 20~30대에 일을 시작해 현재까지 지속하거나 경력단절 여성이 유입된 경우라 한다.

A학습지 회사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K교사는 "20~30대는 들어왔다가 채 2~3년을 못버티고 그만둔다"며 "장기 근속했거나 경력이 단절된 뒤 들어오는 4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K씨는 "그렇다 보니 회사에서 다소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교사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거나 지적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9시 출근, 오후 10시 퇴근…월 150만원

그렇다면 학습지 교사들은 어떻게 일할까. 이들은 보통 일주일에 2~3번 정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오후 부터 회원들을 방문하는 형태로 일한다.

국민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학습지 교사의 하루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3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자세히 보면 학습지 교사는 일주일에 3회정도 오전 9~10시 사무실로 출근해 교육을 받는다. 구몬과 대교는 '미팅', 재능교육은 '집체교육'이라고 부른다. 회사가 새로운 교재를 출시하거나 교육제도가 변경됐을 때 필요한 교육을 진행한다. 회사 차원의 지시나 지침 전달도 이 시간을 통해 이뤄진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 날은 당일에 방문해야 할 회원들의 교재를 점검하는 게 보통이다.

가정방문은 오후 1~2시께부터 이뤄진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보통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학습지 교사는 보통 동을 단위로 구역을 맡고 있다. ㅇㅇ동이 자신의 구역이 되는 것이다.

1과목을 끝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10~20분이다. 회원 한 명이 보통 2~3개 과목을 수강하는 경우가 많아 한 집을 방문하면 30~45분 정도 지난다. 보통 하루에 10가구 정도를 방문하면 8시간이 흐른다. 근무가 끝나는 시간은 대체로 오후 9~10시다. 회원이 몰린 날은 오후 11시가 넘는 날도 있다.

학습지 교사의 월 수입은 평균 잡기가 쉽지 않다. 학습지교사의 수입과 업무량은 가르치는 과목 수에 비례하는데 교사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다만 교사 1명이 일주일에 120~150과목 정도를 수행한다. 대교는 100~130과목, 재능교육은 150과목, 구몬은 100과목 내외가 평균이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월 수입을 계산하면 월 130만원에서 250만원 정도가 된다. 물론 더 적거나 많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습지 교사들이 이 구간에 포함된다.

학습지 한 과목은 3만3000원~3만5000원이고 이중 교사가 가져가는 돈은 수수료율에 따라 다르다. 학습지 회사는 수수료율 구간을 두고 교사마다 지급율을 다르게 하고 있다.

업체별로 보면 대교는 입사 후 3개월동안 과목수에 상관없이 월급 100만원을 보장해준다. 일종의 기본급이자 적응을 위한 안정장치로 볼 수 있다. 4개월째부터는 38~55%의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교사가 총 벌어들인 회비가 100만원일 때 최소 38만원에서 55만원을 받는 것이다. 방문이 아니라 학원처럼 운영되는 러닝센터의 경우 수수료율이 36~45%로 적용된다.

대교는 특이한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바로 감율제도다. 수수료율이 50% 이상인 교사의 1년 실적이 20점이 되지 않으면 수수료율 1%를 깍는다. 점수는 3만3000원짜리 한 과목의 신규회원을 유치했을 때 3.3점이 매겨지는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다.

재능교육의 경우 입사 후 3개월 동안 50과목 이상 맡으면 월급 100만원을 보장해준다. 3개월 이후부터 1년 동안은 수수료율을 40%로 맞춰주고 있다. 이 역시 적응 단계로 볼 수 있다. 1년 이후부터는 수수료율이 35%로 정해진다. 이후 영업 실적에 따라 수수료율이 올라가게 되는데, 최고 55%까지 지급한다. 최고 수수료율인 55%를 받으려면 순증 회원숫자가 500명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55%의 수수료를 받는 교사는 일한지 오래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몬도 입사 후 3개월 동안 50과목 이상을 맡으면 정착금 월 100만원을 보장해준다. 50과목이면 실제 수수료로 약 60만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회사는 약 40만원을 지원해주는 셈이다. 이후 수수료는 36%55%로 적용된다. 역시 수수료 55%를 받으려면 순증가 회원이 405명 이상 필요하다.

학습지교사는 회사와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는 '위탁 사업자' 계약을 맺고 일한다. 이 계약은 1년 단위로 체결하며 위탁 사업구역 및 사업장 방문, 회원 관리 및 모집, 회비 수납 및 회비 수납에 대한 책임 이행, 수수료 지급, 재계약, 계약의 해지 및 회원 인계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학습지교사, 근로자일까? 자영업자일까?

학습지 교사의 법적 지위는 수년째 논란되는 사안이다. 학습지 교사들은 현재 대표적인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 꼽힌다. 이는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중간 영역이라 볼 수 있다.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인가…대법원 판결만 남아

대교, 재능교육 등 학습지 회사들은 교사를 위탁계약을 맺은 자영업자로 간주한다. 반면 교사들은 자신들이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이 문제를 놓고 학습지회사와 교사들은 수년째 법정다툼을 이어오고 있다.

양측의 법정 공방의 스코어는 현재까지 1대 1이다. 2012년 11월1일 1심에서 법원은 학습지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 재능교육노조는 "회사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박태준)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회사에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는 만큼 노조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학습지 교사가 개별적으로 회사와 노사 관계를 갖는 근로기준법의 대상적용은 아니지만, 학습지 노조는 노동조합법의 적용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판결이었다.

학습지 교사에 대해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의 각종 보호제도를 전면적으로 적용해야 할 정도로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노무제공자에는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학습지 교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학습지 교사들은 업무수행과정에 있어서 상당한 정도로 사측의 지휘·감독을 받았으므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다. 2014년 8월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판사 윤성근)는 "학습지 교사가 근로기준법은 물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상으로도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학습지 교사들은 위탁 계약에 따른 최소한의 지시만 받을 뿐 업무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면서 "회사와 사용 종속관계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문제는 현재 2년째 대법원에서 계류중이다. 현재까지 학습지 교사들의 근로자성 문제는 상당한 논란거리로 꼽히고 있지만, 대법원에서 교사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그리 높이 않아 보인다.

대법원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기준인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등을 충족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 분위기는 다소 변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2015년 펴낸 '공정계약을 통한 특수형태업무종사자 보호방안연구'는 학습지 교사에 대해 '학습지교사들은 사용종속성 및 경제종속성이 높은 직종 중 하나로 판단된다'고 명시했다.

◇근로자 아닌 학습지 교사들, 무엇이 힘들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학습지 교사는 무엇이 힘들어질까.

우선 월 수입이 실제 일하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꼽힌다. 학습지 교사는 매주 2~3회 이상 오전 10시께 사무실로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9~10시다. 그러나 학습지 교사가 받아가는 수입은 회원의 회비에서 일정 비율로 나누는 수수료뿐이다.

또 주말에 홍보 활동을 나가더라도 휴일수당은 물론 식대, 교통비 등은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홍보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교사들이 갹출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근로자가 아닌 신분은 퇴직할 때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된다. 학습지 교사 중에는 1980~1990년대에 입사해 20여 년 일한 장기근속자가 상당히 많다. 20~30대 교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다 보니 오래 일한 교사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이들은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역시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또 4대 보험 중 건강·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은 교사가 원할 경우 교사와 회사가 반반씩 부담해 적용한다.

오수영 민주노총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 지부장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우리는 사실상 회사가 시키는 업무를 한다". 교사는 회사가 정해준 업무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고, 회사는 교사의 일별, 월별 업무를 지휘·감독한다"며 "그런데도 우리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오 지부장은 "교사들이 연령대가 높다보니 몸이 안좋아서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뒤 "일하면서 가장 속상한 것은 20여년을 일하고 몸이 안좋아서 그만두는 교사가 퇴직금을 한푼도 못 받고 나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