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커스 뉴스 제공
[신소희 기자]지난 10일 오전 10시50분쯤 송파구 잠실3동 주민센터 1층에 마련된 무더위쉼터.

서울지역 기온이 30도를 넘어가기 시작한 가운데 이곳 무더위쉼터에서는 더위를 피해 찾아온 이용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지만,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이들은 등본 등 민원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민원인뿐이다.

비슷한 시각 강남구 역삼1동 주민센터의 무더위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시에서 재난대비시설정보를 제공하는 서울안전누리 홈페이지에 133명이 이용할 수 있는 무더위쉼터로 검색가능한 이곳은 제 역할을 알리는 팻말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당연히 찜통더위를 피해 온 이용객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조차 자신의 근무지가 서울안전누리에 나오는 무더위쉼터라는 것을 모르는 눈치다.

이곳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여기가 서울시에서 지정한 무더위쉼터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번면 인근에서 무더위쉼터로 운영 중인 삼개경로당은 15명의 어르신이 몰려들어 전혀 다른 모습이다.

폭염특보가 발효된 와중에도 마포구로부터 냉방비 지원이 나와 큰 걱정이 없다며 "(경로당이) 천국 같다"라고 말하는 김주화(77) 경로당 회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이날 민원인만 찾아볼 수 있었던 주민센터 내 무더위쉼터와 달리 노인복지시설에 마련된 무더위쉼터 대부분은 수십명의 어르신이 만족스럽게 이용해 많은 대조를 보였다.

또 온몸을 녹일 듯한 폭염이 기승을 부린 12일 오전 11시께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서 만난 홍모(81) 할머니는 더위를 피해 노인정을 찾았다고 했다.

노인정은 후끈한 바깥과는 달리 쾌적했다. 홍 할머니는 "무더위를 피할만한 장소가 노인정만한 곳이 없다"며 최근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홍 할머니는 "집보다 훨씬 시원하다"며 "밖에 나갔다가 집에 오면 정말 힘든데 이런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인정에는 홍 할머니 이외에도 노인 3~4명이 텔레비전(TV)을 보거나 그림 맞추기를 하면서 소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전에는 병원에 들르거나 장을 보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11시께부터 노인정을 찾는다고 했다. 오후 6시~6시30분까지 머물다 집에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라고 전했다.

◇전국 4만1569곳, 9월30일까지 운영

이 노인정은 노원구에서 지정한 무더위쉼터다. 국민안전처가 밝힌 전국의 무더위쉼터는 모두 4만1569곳에 달한다.

국민안전처의 '무더위쉼터 지정·운영 관리 지침'에 따르면 이들 쉼터는 폭염대책기간인 지난 5월20일부터 운영됐다. 다음달 30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이는 영미권의 쿨링센터(Cooling Center)를 본뜬 것으로 한국에는 지난 2006년 폭염 취약자 관리를 목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무더위쉼터는 지방자치단체가 노인복지관과 경로당, 관공서, 금융기관, 대형마트 등 노인과 신체 허약자를 비롯해 폭염에 취약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주변 장소를 택해 지정한다.

무더위쉼터는 적정 실내온도로 26~28도를 유지하고 지역 또는 쉼터 특성에 따라 야간, 주말 운영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리책임자로 지정된 공무원이 매주 한 번꼴, 폭염이 발생하게 되면 매일 점검해야 한다.

과거에는 원두막이나 느티나무 아래 등도 무더위쉼터로 지정될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냉방기기가 있는 장소가 우선적으로 쉼터로 지정된다.

 
◇폭염 도피처로 활용…일각선 "지원비 적어 에어컨 틀기 무섭다"

많은 수의 노인정, 관공서 등 무더위쉼터는 주기적으로 찾는 노인 또는 지나가다 잠시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은 잠시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숨통이 트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무더위쉼터에서는 지원비가 부족한 편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서울 서대문구의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한 경로당에서 노인들은 "정말 덥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소일하고 있었다.

이 경로당 총무인 김모(81)씨는 "되도록이면 선풍기만 가동하려고 하는데 요즘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많이 쓰고 있다"며 "냉방비가 지원 나오기는 하는데 충분하지 않아 액수에 맞춰서 쓰다보면 에어컨을 덜 틀게 된다"고 했다.

김씨는 "지원금이 부족하면 경로당 예산을 보태기도 한다"며 "그래도 80세 넘는 노인들을 덥게 놔둘 수는 없으니 조금 더 쓰더라도 시원하게 있으시라고 한다"고 전했다.

안전처는 폭염피해 예방 목적으로 올해 지자체에 특별교부세를 25억원 규모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20억원보다 5억원 많은 것이다.

안전처는 또 지자체별로 재해구호기금까지 폭염 대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쉼터 현장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폭염 속에 냉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무더위쉼터 무색해 보이는 곳도…"더위 피하는 곳 맞아요?"

일부 자치센터 등에서는 무더위쉼터의 취지가 무색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은 물론 내부의 전반적인 체감 온도도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무더위센터로 지정된 주민센터를 찾은 주민들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천장에 에어컨과 선풍기가 각각 1대씩 돌아가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더위에 허덕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주민센터에 컴퓨터와 인쇄기를 사용하러 왔다는 박모(42)씨는 "여기가 무더위쉼터였냐"고 반문하며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이 센터에는 쉼터의 별도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1층 민원 업무 대기공간에 2~3인용 소파를 설치하고 이를 쉼터로 활용한다고 했다.

무더위센터로 지정된 서울 노원구의 한 주민센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센터는 별도의 쉼터 공간이 없었고 주민 강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2~3층 강의실 내부에 에어컨을 가동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냉방 상태 또한 폭염을 피해 쾌적함을 느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이곳을 찾은 주민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이 쉼터에서 만난 전모(77) 할머니는 기자의 질문에 "여기가 무더위를 피하는 곳이었나"라며 "일을 보러 왔을 뿐인데 그다지 시원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전 할머니는 "보통 더우니 집에서 주로 있는다"면서 "전기료가 무서워 에어컨은 잘 틀지 못하고 선풍기나 쐰다"고 말했다.

같은 곳에 있던 강모(83) 할머니는 "더위도 피할 겸 (주민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을 일부러 듣는다"며 "아무래도 덥고 그러니 자주 오긴 하는데 아주 시원하다 그런 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안전처의 무더위쉼터 지정·운영 관리 지침은 주민자치센터 민원실처럼 사무공간이 좁고 불편한 장소에 형식적으로 지정하는 사례가 없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안전처 관계자는 "더위를 피해서 시원한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가라는 취지"라며 "업무나 영업 장소인 경우가 많아 기존에 있는 의자 등을 활용해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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