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법정이 이 거울에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생각하며 도반은 무심결에 거울을 뒤집어보았다. 거울 뒷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처음 삭발한 날.’
그 아래 연도와 달과 날까지 정확히 쓰여 있었다.
처음 삭발한 날의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아름다웠으면 그 거울을 가방에 넣어 왔겠는가, 하는 생각에 도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법정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 마음이 해이해지면 그 거울을 꺼내 보곤 했다오. 그러면 머리를 깎을 때의 신심이 칼날처럼 일어나곤 했지요.”(p 285~286)

이 책은 올해로 입적한 지 6년째 되는 법정 스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입적 당시 유언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들마저 모두 거두었던 법정의 이름이 다시 나온건 '불교 소설가'로 유명한 저자 백금남의 끈질긴 추적 덕분이다.

저자는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5년 전부터 그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해, 스님의 초기작 23편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초기작들은 1963~1969년 '대한불교'신문에 법정 스님이 직접 기고한 글들이다.

소설에는 법정 스님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소개된다.

책을 사랑했던 청년 재철(법정)은 출가 후 스승인 효봉 스님 몰래 숨어서 습작을 하다가 들켜서 여러 번 혼쭐이 나곤 했다. 그가 어렵게 써놓은 글들은 노트째 아궁이에서 불태워졌다. 그럼에도 글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순 없었다. 쓰고 또 쓰고, 그러다 마침내 '대한불교'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시 '미소'가 실리면서 ‘시인’으로 당당히 데뷔한다.

쌍계사 탑전에서 겨울 한 철 함께 안거했던 수연 스님과의 인연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법정 스님으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수연 스님의 이야기가 가슴을 적신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불일암과 강원도 산골 오두막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무소유 철학을 일상의 모습 속에서 보여준다. 밤이면 참선을 하다 자고, 해가 뜨면 오두막을 손보고, 배가 고프면 국수를 삶아 먹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다시 보여준다.

소설에는 법정 스님의 시 12편, 불교설화 7편, 칼럼 4편이 실려 있다.

자신의 책을 모두 거두고, '다시는 출판하지 말라'했던 법정 스님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초기작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법정의 무소유 철학이 어디에서 연유했으며, 어떻게 완성되어 갔는지, 그리고 현실에 적극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산승(山僧)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436쪽, 쌤앤파커스,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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