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숙 기자]은행권 수신금리가 1%대까지 떨어진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총 예금잔액은 1200조원을 넘어서며 은행에 돈이 몰리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예금은행의 총예금 잔액은 1200조9007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200조원대를 넘어섰다. 이는 전달 대비 무려 20조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이중 저축성 예금은 1033조461억원으로 전달 보다 14조4328억원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할때 언제든지 인출이 가능한 요구불예금은 167조8546억원으로 한달 만에 5조5974억원이 증가했다.

주체별로는 가계의 총예금이 573조2695억원으로 전달 대비 3조8042억원 증가했고, 기업이 357조8257억원으로 한달 새 무려 16조9524억원이 늘었다.

이처럼 가계와 기업 등의 저축이 크게 늘어나는 원인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 소비보다 불확실성 대비에 대한 심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갈 곳을 잃은 돈들이 안전한 은행으로만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우리나라 총 예금잔액은 경제가 불안정한 위기 상황에 더욱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 2001년 경기침체 당시 예금 증가율이 전년동기 대비 12.5%로 뛰어올랐고 이듬해에도 12.5%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후 2004년엔 -1.3%의 이례적으로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 줄곧 한 자릿수 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8년 예금잔액은 다시 13.8% 늘었고,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11.3%, 16.3%의 높은 증가율을 지속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유럽과 일본 등이 경기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으나 소비는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저축이 증가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저축을 늘려 금을 매입하거나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저축을 늘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 비율은 2010년 이후 최고치인 9.7%를 기록했고, 올해에는 10.4%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일본도 올해 가계저축률이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중앙은행(BOJ)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일본 가계가 보유한 현금 및 예금 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1.3% 상승했다. 비금융기업이 보유한 현금 및 예금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8.4% 늘어나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기본적으로 가계저축이 늘어나면 기업의 투자재원 마련이 쉬워지고, 이는 가계소득 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최근 저축률 상승이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소비를 줄이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은행 등에서 빌려다 쓰는 가계 빚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지만, 그 돈이 소비로 연결되기 보다는 빚을 갚거나 쌓아두기만 하면서 실물경제에 스며들지 못하고 금융권과 부동산 등에만 머물고 있다.

이러한 소비 위축은 가뜩이나 경기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꺼리는 기업들의 투자 감소로 이어져 경기침체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수출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과 '소비절벽' 현상까지 겹칠 경우 우리 경제가 '저축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의 입장에서 미래 소득에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소비위축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소비를 줄이고 예비적인 목적의 저축을 하게 된다"며 "기업은 노동수요 증가가 발생하더라도 신규채용보다는 기존 근로자의 초과근로를 선호하고 임금인상보다는 내부유보를 확대하며 투자를 이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에서는 정부가 재정정책 및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미시정책들을 세밀히 조정하며 우리 경제의 구조적 리스크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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