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김형준(46·사법연수원 25기) 부장검사의 비리 연루 사실은 검찰 안팎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이른바 검찰 내 ‘선두 그룹’으로 분류되는 엘리트 검사였고 박희태 전 국회의장(장인)이라는 든든한 ‘백’까지 뒀기 때문이다.

김형준 부장검사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2006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와 2007년 삼성특별수사감찰본부 등 경제 사건 전담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김 부장검사는 그동안 법무부 보다는 주로 일선 검찰청 수사 부서를 돌며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삼성비자금 특별수사 감찰본부 파견,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인천지검 외사부장,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 7월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특별환수팀장을 맡으며 주목을 받은 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와 증권범죄합수단장을 겸임하면서 ‘증권가의 저승사자’로까지 불리면서 ‘거악’을 척결하는 ‘스타검사’가 됐다. 때문에 향후 서울중앙지검 3차장 후보로도 빠지지 않고 거론돼왔다.

3차장은 전국 최대 규모인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내에서도 가장 막강한 화력을 쥐고 있는 요직이다. 특별수사부·강력부·첨단범죄수사부·공정거래조사부·방위사업수사부 등에 대한 수사지휘를 총괄한다. 이른바 ‘거악 척결’의 최전선의 선봉장이다. 검사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요직이기도 하다.

김 부장검사 자신도 김씨와의 SNS 대화에서 이런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동창과 술집으로 놀러 다니며 수백만원을 쓰고, 수사 무마를 대가로 용처가 불분명한 돈까지 받아쓰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한마디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

 
'부장검사 스폰서' 파문이 나날이 확산되면서 사건 장본인들의 '뒤틀린 우정'이 어떻게 파국을 맞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제의 김형준 부장검사와 스폰서 김희석(46)씨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30년 지기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모 고교를 다닐 때 김 부장검사는 학생회장, 김씨는 반장을 했다.

적어도 주변인들 눈에 두 사람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친구 사이로 보였다.

세월이 흘러 법조인과 사업가로 각자의 진로를 걷게 되자 이들의 관계는 '친구'에서 '검사와 스폰서 업자'로 변질됐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7월까지 김 부장검사와 김씨가 나눈 카카오톡에는 두 사람의 빗나간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 부장검사는 다소 낯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매번 김씨를 "친구" "친구야"라고 불렀다.

두 사람의 우정이 그만큼 돈독해서라기보다는 금전적 도움 요청 등 '아쉬운 소리'를 할 때 '우리는 친구'라고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 2월3일 오전 11시11분에 내연녀로 추정되는 곽모씨의 계좌번호를 김씨에게 보냈고, 김씨는 곧바로 "출근해서 바로 보내고 (카카오)톡 줄게"라고 대답했다.

 
이어 1시간 뒤인 낮 12시13분에 "5백 보냈다"라며 "내 전용 계좌에서. 입금자는 그냥 회사이름으로 했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라고 보냈다.

이들의 돈 거래가 친구끼리의 순수한 도움 주고받기로는 해석되지 않는 대목이다.

김 부장검사는 약 한 달이 지난 3월5일에도 곽씨에게 돈을 주라고 김씨에게 부탁했다.

그는 "어제 이야기한대로 내게 빌려주는 걸로 하고 월요일에 보내줘. 마음 완전히 되돌리려고 한다. 도와주라 친구"라고 보냈다.

이어 "송금은 OOO이름으로 내가 마련해주는거라 했으니 지난번 거 니가 보낸 거 알아서 같은 회사 이름으로 하면 안 되고"라며 '방법'을 구체적으로 일러주기도 했다.

사이가 벌어진 내연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김씨에게 돈을 보내게 했으며, 이런 부적절한 성격의 도움이 수차례 이뤄져왔음을 알 수 있다.

김 부장검사는 내연녀에게 '생일선물'로 오피스텔을 사주기까지 했다. 이 역시 자기 돈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17일에 김 부장검사가 "선릉 대림으로 확정…2016년 1월5일경 입주. 바쁘겠지만 이달말 26일 생일이라니까 계약해주면 선물로 주고 일 안하게 하고 타이밍 좋겠다. 고마우이 친구"라고 보내자, 김씨는 다음날 '오케이'를 뜻하는 "ㅇㅋ"라고 화답했다.

이어 같은 달 25일에 "친구…아무래도 좀 떨어진 곳이 나을 듯. 광진 자양사거리 OOOOOO 1000만원에 65만원으로 하려고. 강남 괜히 계약하지 말게나"라고 오피스텔 지역을 바꿨다.

김씨는 "내가 가서 계약할까, 아니면 OO한테 돈을 보내줄까"라고 되물었다.

두 사람의 '이상한 우정'은 김씨가 실소유주인 회사의 대표 한모씨가 김씨를 사기(60억여원) 및 횡령(15억여원)으로 고소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수사가 진행되자 김 부장검사는 김씨의 진술을 '모니터링'했다.

그는 7월10일 김씨에게 서부지검 담당 검사의 실명을 언급하며 "조사할 때 너랑 나랑 술 먹은 거만 물어봤어, 아님 2차도 갔느냐고 물어봤어"라고 확인하는 등 초조함을 드러냈다.

이어 "한OO는 매번 먼저 갔으니 자네와 나 남았을 때 내가 한 30분 마시다가 다음날 아침 회의 있어서 12시 넘으면 갔다고 해야 해"라고 요구하는 등 '위증 코치'에도 나섰다.

또 "검사 사표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고 변호사도 등록 안돼 요즘"이라며 절박감을 호소했다.

그는 이처럼 부적절한 거래를 계속하면서도 '총선'과 '공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정계 진출 의욕을 내보였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11월13일 카톡에서 "친구, 이번 진경준 검사장 주식 파동 보면서 나도 농지 문제는 백부로부터 증여받은 거지만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아"라며, "내역 보내니 한 번 검토해서 매각방안 좀 도와주라. 검사장 승진에도 그렇고 차후 총선에 나가려해도 김씨는 검찰이 자신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달 8월26일을 기점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잘 나가는 검사 친구에게 오랜 시간 물심양면의 지원을 하며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결정적 상황에서 별 도움을 못 받고 감옥 신세를 지게 될 처지에 놓이자 강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그는 같은 달 29일 영장실질심사에 나오지 않고 도망간 후 한 언론사에 연락해 문자 메시지를 비롯한 김 부장검사 관련 자료를 통째로 넘겼다.

김 부장검사가 꼬치꼬치 수사 상황을 물으면 "형준아, 왜 이리 걱정 하니. (너한테 불리한 내용) 얘기 안 했어"라며 감싸줬던 모습에서 180도 바뀐 것이다.

김 부장검사도 대검 감찰조사에서 매번 "친구야"라고 불렀던 30년 동창에 대해 "그 사람이 자꾸 내 이름을 팔고 다녔다"라며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통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바보같은 놈", "네가 한 게 있느냐"라고 하는 등 다투기도 했다.

10대 시절 순수하게 맺어졌을 이들의 인연은 추한 결말을 맞고 있다. 김씨는 이미 구속됐고, 김 부장검사 또한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높아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한편 7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김 부장검사의 모든 비위를 조사해 엄벌하라고 지시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이 사건과 관련해 제기되는 모든 비위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이 있는 자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을 것을 김 총장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을 맡아 주가조작 사범 수사를 전담하는 등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렸던 김 부장검사와 스폰서, 그들의 몰락은 처음부터 예고된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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