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창극단 '오르페오전'
[김승혜 기자] “날자, 날자, 날아보자. 훠이 훠이 훠어이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 간판스타인 김준수·이소연이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장면은, 감정의 격랑을 앞둔 예고편이다.

광활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를 프로젝터 영상으로 뒤덮은 ‘프로젝션 매핑’으로 두 소리꾼은 파도가 매서운 바다,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위를 마치 활공하는 듯했다.

청바지와 흰 셔츠 등 모던한 차림을 한 두 사람의 창(唱)은 역동적인 장면과 달리 애달픔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

이소연이 연기하는 ‘애울’은 사라져 버리고, 그녀의 남편 ‘올페’ 역의 김준수는 “나는 남고 애울은 없다. 신은 침묵해도 난 그 다음을 묻겠다”고 사자후를 토한다.

지하의 세계에서 지상의 문턱으로 나아가는 도중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겨,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놓치는 오르페우스는 올페.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애울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다룬 대표적인 오페라 소재인 그리스 신화가 매끈한 창극으로 탈바꿈됐다.

23일 저녁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신작 창극 ‘오르페오전’이다. 창극이 오페라와 뮤지컬 이상의 볼거리로 넘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가장 먼저 눈을 현혹시키는 건 무대. ‘오페라 연출가’인 이소영 연출은 자신의 두 번째 창극인 ‘오르페오전’에서 어떤 상업적인 뮤지컬보다 역동적인 턴테이블 무대 사용법을 보여준다.

“하루를 살아도 너와 함께면 너의 하루와 내 온 내일과 바꿀래”라고 노래하던 연인을 찾아 나서는 올페의 주 드나듦이 통로가 이 턴테이블 무대다.

이 연출이 김희재 무대 디자이너와 함께 ‘방패연’ 모양으로 해오름 무대를 탈바꿈 시킨 이유다. 실은 인연·관계성을 상징하고 얼레는 그 근원을 품는데, 방패연의 배꼽이 턴테이블 무대다.

올페는 애울을 찾아 그 턴테이블 무대 속 작은 구멍으로 사라진다. 육안으로 45도 가량은 돼 보이는 급격한 경사를 지닌 턴테이블 무대가 천천히 180도 돌면 이승은 어느새 저승이 된다. 그러는 동안 오케스트라 피트 왼편에 설치된 얼레 역시 천천히 돌아간다.

작창 작곡 음악감독을 도맡은 황호준은 이처럼 거대한 메커니즘으로 서사를 압축한 ‘오르페오전’의 내적 정서에 맞게 기존 창극의 장단을 해체한다. 힙합 비트 위에 랩을 얹고, 재즈의 리듬을 껴안은 이유다.

개막 다음 날 결혼함에도 섭외를 한 안무가 김보람(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대표)의 안무는 절묘한 한 수였다. 예상치 못한 몸짓의 그의 안무는 망자의 저승길을 안내하는 꼭두, 영혼들 등 저승 세계의 움직임을 자연스레 대변한다.

‘오르페오전’은 결국 웅장한 오페라의 서사, 반드러운 뮤지컬의 비주얼, 다채로운 무용의 호흡 등을 아우르며 창극이 변화무쌍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오르페오전’에서 또 주목할 점은 빛의 활용이다. 수직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각도의 조명을 많이 사용한다. 조명 디자이너 이우형의 이런 디자인은 세로 폭 대비 가로 폭이 배 가량 넓은 해오름극장의 단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가 됐다.

이런 수평적인 구조는 민초들의 삶을 뜻한다. 저승과 이승의 세계를 오가던 무대의 마지막은 스케이트보드와 외발 전동휠로 급격한 경사를 타는 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가 된다.

무대 위를 떠다니는 대형 방패연이 다양한 이들을 잇는다. 평온한 일상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올페는 몸에 내내 지니고 다니던 피리를 격렬하게 불어댄다. 그와 관객의 귓가에는 애울의 “돌아보지 말고 날 데리고 가, 다음엔”이라는 애잔한 소리가 감돈다.

국립창극단은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있던 창극 장르를, 다양한 실험으로 심장충격을 벌떡 일으킨 주인공이다. 이번에도 도전은 통했다. 창극과 여러 장르의 혼합으로, 품격 있는 대중문화라는 미답(未踏)을 뚫고 있다. 올페 역의 김준수와 유태평양, 애울 역의 이소연 등 스타 단원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오르페오전’은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2016~2017 레퍼토리 시즌의 개막작이다.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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