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국내 최대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961년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어버이연합 자금지원 논란에 이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등 정치적 이슈에 잇따라 연루돼 구설에 오르고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전경론 해체'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기구라는 위상과 달리 그동안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업계로 부터 받아온 상황에서 일련의 사태는 전경련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국회 대표 경제통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 대표 경제통 의원인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이 해체 주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여기에 여당 대표 경제통인 유승민 의원도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며 힘을 싣는 분위기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올 해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국정감사장이 '전경련 성토장'으로 변질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전경련을 '정경 유착의 통로', '권력의 심부름 단체'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전경련은 과거에도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적이 많았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 논란과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비자금 제공,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논란 등을 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전경련은 '전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사과를 통해 비난을 잠재우고 위기를 넘겼다. 기업 이해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동정론도 매번 전경련을 위기에서 끄집어 내줬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의 핵심에 전경련이 자리잡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론은 아예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분위기다. 그 결정판이 '전경련 해체론'이다.

전경련이 존립근거를 상실했다는 게 이번 해체론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에서 회원사를 압박해 자금을 모집하는 등 아예 '자유시장 경제 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게 비난의 핵심이다.

이런 여론 조성엔 재계 각 분야가 동참하고 있다. 최근엔 이례적으로 보수성향 경제단체인 국가미래연구원까지 가세해 전경련 해체론에 힘을 보탰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지난 5일 경제개혁연대와 공동으로 낸 성명에서 "전경련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회원사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의 발전에도 역행하는 전경련은 그 존립 근거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힘빼기엔 회원사들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전경련 탈퇴의사가 있냐는 의원들 질의에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17개 공공기관 모두 전경련에서 탈퇴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조만간 '전경련 탈퇴 도미노'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전경련은 파문이 확산되자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합, 새로운 재단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위법 논란이 불거져 나오고 있어 전경련은 더욱 곤혹스런 처지다.

즉 전경련은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이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해산절차를 밟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사들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K스포츠 재단의 경우, 이사들이 공식적으로 사임 처리가 되지 않은 만큼 재단 해산 안건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단체는 이를 '현행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을 통해 "현행 민법에 따르면 재단법인 출범 이후에는 출연자조차 재단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다른 목적에 활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재단 해산 사유도 '법인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등'으로 명시해 제3자가 함부로 재단 해산을 추진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전경련이 재단 해산, 새로운 통합재단 설립, 출연재산 처분을 결정하는 것은 월권이자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전경련은 일단 검찰의 어버이연합 자금지원 의혹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수사를 일단 지켜본 뒤 향후 방향을 결정하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전경련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 해체론은 확대재생산되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재계의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 체제의 전경련에 대한 불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전경련이 그동안 업계의 주요 현안 등과 관련해 재계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존재감이 크게 떨어진데다 오히려 정권의 이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4대기업 총수가 전경련 회장직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이 단체를 재계의 맏형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전경련이 본래 기능을 상실한 것은 이미 오래전 상황이고 해체론이 불거지는 것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사실 크게 놀라지도 않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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