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 충주시장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진보(進步)이고 무엇이 보수(保守)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을 못한다.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사람은 진보고,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보수란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보수고, 젊은 사람은 진보란다. 새누리당은 보수고 야당은 진보란다. 보수는 우파고, 진보는 좌파란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진보는 현상(現象)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보수는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공산주의자는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세습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체제가 확립되어 정권이 교체되며 개혁과 혁신을 거듭하여 왔다. 어디가 보수고 어디가 혁신인가? 한반도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뒤바뀐 느낌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 사람들이 대체로 진보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을 세습하여 나이 어린 김정은이 북한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것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청년들도 없다.

호남과 영남이 김대중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호남의 나이 많은 사람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또 영남의 젊은이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경상도 사람은 현상태가 좋고 전라도 사람은 현상을 타파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진보와 보수의 논리로 대통령후보를 지지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히 잘 못된 것이다. 진보와 보수, 이분법이 정치인을 선출하는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

이분법으로 판단을 하려면 옳으냐, 그르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로 나눠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인만 제자리를 찾아가면 보다 더 빨리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정치인 탓만 할 수도 없다. 정치인을 누가 뽑았는가? 엉뚱한 잣대로 선택하고 정치인 탓만 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정치인은 당선되기 위해서는 무슨 공약이라도 다한다. 실현하면 공약(公約)이지만 실현하지 못하면 빌 공(空)자 공약(空約)이 된다.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처벌할 수도 없다. 정치인의 말에 진정성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은 상대방정책은 일단 반대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대방 주장의 반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협정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면 당시에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이어받아 추진하는데 이번엔 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마치 정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정치인들의 흑백논리식의 정치선동이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집약이 됐다. 이제 여와 야의 대립이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대립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개념정립이 시급하다.

자유민주체제를 확립하여 개혁을 하자는 것이 진보이고, 20세기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고수하자는 것이 보수다. 연령의 고하를 떠나 변화를 추구하며 개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진보다. 집권하면 자연스레 보수가 되고 정권을 획득하기위해선 변화 즉 진보를 표방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선악개념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로 국론이 이분화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상에 안주할 수가 없다. 그 걸 원하는 사람도 없다.

진보는 보수보다 젊은이들에게 어필되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이 혼란스럽다. 젊은이들이 비교적 좋아하는‘진보'라는 단어를 더 이상 북한의 체제가 진보적인 것처럼 인식되게 해서는 곤란하다.

진보와 보수, 정치적 주장에 국민들이 더 이상 편가르기 당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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