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의원
여느 때 선거 같았으면 지금 쯤 각 정당의 후보가 하나 둘 결정되기 시작하고, 후보자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자체의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6.4 지방선거는 룰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우왕좌왕 하는 모습입니다.

2012년 11월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후보는 한 행사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와 새누리당은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여러분에 대한 정당공천폐지를 약속드린다. 그동안 기초의원, 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으로 인해 지방정치 현장에서 중앙정치 눈치 보기와 줄서기 등의 폐해가 발생했고 비리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기초의원과 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를 통해 기초의회와 기초단체가 중앙정치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주민...생활에 밀착된 지방정치를 펼치도록 돕겠다.”

박근혜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정당공천폐지는 시도해 볼 만한 모험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작년에 치러진 가평군수 보궐선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이후 박근혜대통령은 공약파기에 대한 단 한마디의 변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야는 올해 초 정치개혁특위에서 정당공천폐지에 대한 법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으나 이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여야 공통 공약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저는 잘못된 약속이라 할지라도 국민과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통합 과정에서 대통합을 위한 지도부의 합의를 존중해 그동안 공천문제 언급을 자제해 왔습니다만 마침 새정치 민주연합 지도부가 당원과 국민의 의견을 묻겠다고 하니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방선거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참담한 모습입니다.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과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팽겨쳤고, 민주당은 약속을 지키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국민과 입후보자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실제 이번에 무공천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은 공천제를 유지했을 때보다 더 위험한 것들이었음이 선거현장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무공천은 장점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애로점과 한계가 있고 혼란을 야기하는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후보들의 공약한 공천폐지는 정치개혁의 본질이라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정당정치를 확립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당공천 폐지 논란을 영구 종식하고 정당공천을 통해 정당정치를 살려야 합니다. 또한 그동안 공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사항들을 철저히 개혁, 보완하는 한편 능력과 진정성을 갖춘 후보를 조속히 공천해 지방 선거에 일사불란하게 임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거짓말 못지않게 금기시해야 할 것이 자기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결국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해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일각에서는 4년 후에 재논의 하자는 주장을 펼치는데 혼란이 불거지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무공천 논란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인 지방선거가 잘못 치러질 위기를 맞기도 했고, 국민의 불신을 샀습니다. 저는 무공천 논란으로 인한 혼란과 잡음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여러 여당이 있었으나 지금의 새누리당처럼 약속을 밥 먹듯이 저버리는 정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무공천 논란 때문에 다소 혼란이 있었습니다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6.4 지방선거가 참신하고 능력있는 인물들에게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는 장이자 오만과 독선에 빠진 박근혜정권의 심판대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본 내용은 필자의 의견이며 본지와는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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