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 “우리나라 권력서열1위가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박근혜”라고 할 말큼 비선 실세로 통한 최순실.

그는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아바타’인가, 아니면 최순실 씨가 대통령의 아바타인가”라며 “장자가 얘기한 것처럼 대통령이 최순실 씨가 되는, 아니면 최순실 씨가 대통령이 되는 ‘호접몽(胡蝶夢)’을 꾸는 것인가”라고 할 정도로 사실상 권력 실세였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대통령 말고 누가 재벌들에게 하루만에 770억을 걷어들일 수 있을까

최순실 씨는 1970년대 후반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고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이다.

최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 ‘비선 논란’ 역사의 뿌리다. 최씨 일가와 구설수로 얽힌 박 대통령의 시간은 무려 40년이다. 박 대통령 정치 인생의 그림자를 조망할 때 곧잘 그들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인연'의 시작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는 20대 초반부터 네 살 많은 박 대통령의 '말벗'이자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이후 박 대통령 후광을 빌려 자신의 활동 범위와 사업을 확장해왔다. 박 대통령이 두 동생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박 대통령 주변 생존 인물 가운데 가장 끈끈하게 얽힌 최측근은 최씨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시절 정신적 멘토였다는 고(故) 최태민씨 소개로 1970년대 중반 최씨의 딸 순실씨를 만났다. 최씨는 자신이 세운 단체 '대한구국선교단'에 박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이후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조직을 급속히 키웠다. 최씨는 새마음봉사단에 중·고교·대학생은 물론 종교계·재계 등을 모아 각종 산하 기구를 만들었는데, 1979년 단국대 재학 중이던 딸 순실씨에게 대학생 총연합회장을 맡겼다.

새마음봉사단은 국민 정신교육이나 봉사 활동도 했지만, 어물시장 운영권을 따내는 등 각종 이권 사업도 벌였다. 이때 대기업 총수·임원들을 불러 거액의 운영기금을 갹출했다고 한다. 당시 태평양을 시작으로 현대·동아·대농·쌍용 등 재벌들이 차례로 '새마음 직장 봉사대'에 참여했다. 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기업 모금 방식과 유사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박 대통령이 칩거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최씨가 1985년 재회 이후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불렀다는 목격담도 있다.

지난 2006년 박 대통령이 지방선거 유세 때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최씨가 병원 입원실이나 삼성동 자택을 드나들며 필요한 일을 처리해줬다"는 얘기가 있다. 최근까지도 최씨가 청와대에 박 대통령의 옷·액악세서리·여성용품 등을 챙겨 보낸 것은 수십 년 된 일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씨 역할이 단순히 '말벗'이나 '여자 수행원'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씨는 1980년대 들어 박 대통령과 관련된 조직·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우선 1986년 박 대통령이 이사장인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을 강남에 개설했고, 박 대통령이 삼양식품에서 넘겨받아 이사장을 맡은 '한국문화재단' 부설 연구원 부원장을 맡아 출판이나 장학사업 등의 실무를 맡았다.

서울 신사동에 있는 한국문화재단은 2002년 박 대통령이 잠시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탈당 선언문을 작성하는 등 비선(�線) 업무를 수행한 장소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대선 국면에서 해체되기 전까지도 박 대통령이 드나들어 일명 '신사동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최씨가 실무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정계 입문을 전후해 최씨가 밀착 수행했던 정황은 정계에서도 극소수만 기억하고 있다. 한 인사는 본지에 "1994년 야인(野人)이던 박 대통령이 한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할 때 최씨가 따라오더라. 인터뷰 뒤 방송사 사장·국장 등 고위간부들과 식사 자리가 이어졌는데, 최씨가 배석해 깜짝 놀랐다.

그냥 수행비서면 그런 자리엔 합석할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된 뒤 의원외교 활동차 영국에 갈 때 당시 정식 보좌관이 아닌 최씨가 함께 왔다"며 "최씨가 영어를 꽤 잘해 통역도 했고, 박 대통령을 대신해 크고 작은 중요한 일들을 결정했다. 굉장히 자신감 있고 유능해 보였다"고도 했다.

한 여당 중진급 인사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최씨 가족과 함께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최씨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1996년부터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으나, 부부 사이가 멀어지면서 정씨도 자연스레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나게 됐다고 한다.최씨와 정씨 부부가 박 대통령 의원 시절 추천해 들인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보좌관 등은 현재도 청와대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서 최씨는 '회장님'으로 불리면서도 공식 직책은 전혀 맡지 않았고, 다만 측근 남성들을 내세워 인사와 사업·자금 운용 등을 총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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