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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럼프'에 빠진 대한민국
김홍배 기자  |  klmhb@sisaplu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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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0  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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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처
[김홍배 기자]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뒤엎고 미국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반전 드라마를 연출한 9일, 대한민국은 또 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이번엔 ‘실럼프(최순실+트럼프로 인한 정신적 충격)’다.

정국을 강타한 최순실 게이트로 “이게 나라냐”고 한탄했던 이들은 태평양을 넘어 날아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이제 살아 내는 일을 걱정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혼돈과 불확실성의 늪에 잠긴 듯 실럼프 증상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국일보가 10일 보도했다.

회사원 한원식(35)씨가 전하는 감정 상태는 남 얘기가 아니다. 그는 9일 실시간 속보로 뜨는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보느라 업무 내내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끝내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느낀 것도 잠시. 이후 가슴이 답답해져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씨는 10일 “최순실 사태로 무기력증이 밀려 왔는데 트럼프 당선이라는 뜻밖의 결과까지 접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회의감이 들었다”며 “한국을 깔보는 트럼프의 미국을 생각하면 앞날을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실럼프’의 주요 증상은 잇단 정신적 쇼크로 인한 답답함과 무력감이다. 자고 일어나면 메가톤급 악재가 터져 감당하기 벅찬 일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간호사 조모(30ㆍ여)씨는 “미국 대선에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결과를 보고는 마치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권모(31)씨도 “상식을 뛰어 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 억지로 이해하려니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온라인에서도 ‘최순실 게이트 충격이 가시기 전에 온 트럼프 쇼크 때문에 큰 암덩이가 두 개나 발견된 기분(네이버 아이디 jeo***)’ 등 정신적 충격을 토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시민들의 두려움은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안 그래도 최순실 게이트로 ‘내우(內憂)’에 빠진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을 주장한 트럼프의 공약은 우리 경제ㆍ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외환(外患)’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안팎의 위기에 대처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점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자영업자 신모(43)씨는 “트럼프 당선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이 때 국정운영 자격을 잃은 대통령을 믿을 수 없으니 국민은 누구에게 의지하란 것이냐”고 반문했다.

역사학자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도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제관계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졌는데 자신이 입을 옷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외교 안보를 맡길 수 없다”고 일침을 놨다.

온라인에서는 트럼프를 비롯,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 강경 성향 주변국 정상들에 둘러싸인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을 섞은 인물을 ‘Princess(공주)’로 설명한 합성 사진이 인기를 끌고 있다.

“키를 쥔 선장이 없으니 이제 각자도생 하자”는 자조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대학생 박모(24ㆍ여)씨는 “내부엔 도둑이, 외부엔 맹수가 호시탐탐 노리니 이게 진정한 ‘헬조선(지옥같은 한국)’이 아니냐. 믿을 건 나와 가족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40)씨도 “이게 나라인가 싶어서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한국은 최순실로 망하고 트럼프 때문에 세계도 망할 것 같다”며 “시대를 잘못 태어났으니 차라리 지구를 떠나는 편이 낫겠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분노의 감정은 전염성이 강한 만큼 국정농락 전모를 철저하게 파헤쳐 정부의 권위를 되찾고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대미전략을 마련해야 실의에 빠진 국민을 정상 일상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고 제언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는 집안 일만으로도 절망과 회의가 팽배한데 경제와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미국마저 예측 불가능해 지면서 정부수립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놓여 있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집단 분노로 확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각계 지도층이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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