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숙 기자]2010년 이후 4차례나 실패를 거듭했던 정부의 우리은행 지분 매각(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이 9부 능선을 넘었다.

11일 금융위원회는 이날 실시된 우리은행 지분 매각 본입찰에 입찰 자격을 부여받은 16개 인수 후보 중 8곳이 참여했고 모두 예정가격보다 높은 주가 수준에서 지분 인수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우리은행이 15년 만에 민영화를이루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마감한 결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정한 최소 자격요건인 예정가격을 웃도는 가격에 입찰제안서를 낸 투자자가 8곳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인수 희망 지분은 총 33.677%로 집계됐다.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동양생명, 키움증권,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KTB자산운용 7개사는 모두 금융기관들이다.

사모펀드 중에서는 IMM프라이빗에쿼티만 참여했다. 이들이 신청한 지분은 33.677%로 우리은행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예정하고 있는 매각 물량 30%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우리은행 민영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예정가격(커트라인 가격)에 못 미치는 가격에 인수 신청을 할 경우 응찰 자격을 상실하는데 예정가격은 이날 우리은행 종가(1만2750원)보다 소폭 할인된 가격에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입찰 자격을 확보했던 국내외 사모펀드들이 대부분 인수를 포기한 것은 최근 수개월간 우리은행 주가가 강세를 보이면서 예정가격이 올라가자 가격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일단 매각 물량을 넘어서는 주문이 들어온 만큼 안도하는 한편 8곳 모두를 인수자로 선정할지, 한 곳을 탈락시켜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분 인수에 참여한 곳을 보면 절반이 보험·증권사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단순히 향후 시세차익을 노렸다기보다는 우리은행과의 시너지 창출을 염두에 두고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국내 4대 시중은행 중 보험·증권 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계열사가 없는 곳은 우리은행뿐이다.

우리은행은 민영화를 위해 몸집을 가볍게 한다는 전략하에 지난 수년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현 DGB생명) 등을 매각한 바 있다.

이번 본입찰에 참여한 한화생명과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역시 은행을 계열사로 갖고 있지 않은 주요 증권·보험사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 지분 인수 후 은행 지점을 통해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화생명의 경우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 우리은행 지점에서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등의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동양생명 최대주주인 중국 안방그룹 역시 우리은행과의 협업은 물론 앞으로 국내에 금융지주사를 세울 경우 우리은행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사모펀드의 참여는 의외로 저조했다.

지난 8월 22일 매각 공고 당시 1만250원이던 우리은행 주가는 11일 현재 24.3%나 오른 1만2750원으로 인수 초기보다 20% 정도 많은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라 사모펀드가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13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고 오후 4시에 최종 인수자를 발표한다. 당초 발표 일정(14일)을 하루 앞당긴 것으로 발표 시점이 늦어져 사전에 정보가 새거나 다른 돌발변수가 나타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수자들이 적어낸 인수가격이 가장 큰 선정 요인이지만 비가격적인 요소도 고려할 것이라고 금융당국은 밝혔다.

하지만 매각 대상 지분(30%)을 조금 넘긴 수준의 인수 신청이 들어온 상황이라 비가격적인 요소를 크게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동양생명을 제외하고는 외국계가 없어 인수자를 선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13일 선정된 인수자들은 28일까지 인수대금을 납부해야 한다. 오는 13일 최종 낙찰자가 28일 대금을 치르고 우리은행 주식을 넘겨받으면 민영화 절차는 종료된다. 12월 중 과점주주들이 선임한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가 구성되면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도 크게 좁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은행 민영화가 성공할 경우 이광구 우리은행장 연임이 가능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8월 매각공고 때 금융당국은 인수자로 선정된 과점주주 위주로 새롭게 사외이사진을 구성한 뒤 행장추천위원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우리은행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6명, 비상무이사 1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6명 중 4명이 내년 3월 임기 만료라 이번에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2명의 사외이사도 교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과점주주 위주로 새롭게 구성될 사외이사가 이사회 내에서 큰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고 과점주주가 행장 추천과 경영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업계에서는 이 행장이 최근 실적과 재무건전성 개선을 이끌어냈고 연초부터 해외 기업설명회(IR)를 다니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은 만큼 연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 과점주주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제3의 인물이 행장으로 추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은행 민영화발 금융권 지각 변동 또한 예상된다. 우리은행 내부와 주식시장에서는 민영화 후 증권사와 보험사들의 인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은행은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고 이 행장이 지주회장으로 승진한 뒤 우리은행장에는 다른 사람이 올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벌써부터 증권 쪽에서는 하이투자증권 인수전에, 보험에서는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ING생명이나 KDB생명 인수전에 우리은행이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시중에 매물로 나와 있는 보험·증권사를 우리은행이 가져갈 경우 신한, KB, 하나금융지주 등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여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은행 과점주주를 한화생명, 한국투자증권 등 보험·증권사들이 대부분 차지할 경우 우리은행의 보험·증권사 인수보다는 이들 과점주주와의 시너지를 노리는 쪽으로 경영 전략이 바뀔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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