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남태평양 티아베아 섬마을 추장 투이아비의 연설문을 모아놓았다는 ‘빠빠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투이아비가 유럽에 갔을 때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거의 모두가 땅만 쳐다보고, 조금이라도 빨리 걷기 위해 두 팔을 힘차게 내젓더란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잠시 멈춰 세우기라도 하면, 그들은 짜증을 내며 소리치더란다. “왜 저를 방해하시는 겁니까? 저는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현대인들은 바쁘다. 어느 개그 프로의 유행어처럼 바빠도 너~무 바쁘다. 바쁠 뿐만 아니라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빠야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것 같고, 바쁘지 않으면 뭔가 잘못 된 것 같으며, 이러다가 내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개업한지 얼마 안 된 변호사가 있었더란다. 사무실 문을 연지 이틀이 지나도록 소송 의뢰인이 없다가, 사흘 째 되는 날 드디어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

변호사는 자기가 매우 바쁜 변호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방문자를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한창 사건에 대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 이윽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변호사는 자기가 너무 바빠서 미안하다며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방문자 왈, “실은 선생님께서 신청하신 전화를 놓아드리려 왔는데요.” (송봉모 신부의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에서 인용)

꼭 그리 바쁜 것처럼 보여야 할 만큼 바삐 살아야 하는가? 왜 그리 바쁜가? 정말 그리 바쁜가? 사람들은 크든 작든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삐 산다.

그리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기에 이를 이루기 위하여 또 바삐 움직인다. 문제는 이렇게 바삐 움직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오늘(present)이라는 선물(present)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휴식이 주어져도 머리는 해야 할 일에 가 있고, 어쩌다가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오히려 이를 불편해하기도 한다. 혹자는 말한다.

‘내가 해야 할 목표를 이루면 그때 가서 오늘이라는 선물을 누리겠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때 가면 그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만들어 끊임없이 달린다.

그러면서 곧 선물을 누리리라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그의 인생 종착역은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오늘을 누리라는 것은 할 일은 소홀히 하면서 놀기에만 힘쓰라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심, 이를 위해 남을 이기겠다는 경쟁심, 거기에서 오는 남에 대한 미움, 시기, 질투 등을 내려놓고, 맡겨진 오늘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몸은 오늘에 두면서 시선은 내일에만 두지 말고, 오늘 이 순간을 너의 온 존재로서 받아들여 오늘을 만끽하라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 바쁘기만 할 것인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오늘을 자기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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