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이달 초 서울중앙지검 11층 영상 녹화 조사실. 검사와 최순실(60·구속)씨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잠시 뒤 조사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씨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통화 내용이었다. 검사는 한 시간에 걸쳐 최씨와 정 전 비서관이 나눈 얘기가 담긴 녹음 파일 3~4개를 들려줬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최 씨의 심경이 변한 순간이다.

"통화 속 여성이 본인이 맞죠?" 검사의 질문에 최씨는 맞는다고 인정하면서 "(정 전 비서관과) 내 통화 내용이 다 녹음돼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최씨가 들은 녹음 파일들은 검찰이 지난달 29일 압수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것들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모르쇠'로 일관하던 최씨는 녹음 파일을 들은 뒤 자신이 정 전 비서관을 시켜 K스포츠재단 임원 추천 인사의 명단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사실 등을 자백했다고 한다.

26일 검찰이 청와대 기밀문건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유출된 진상을 담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을 극도의 보안 속에서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이 파일이 향후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할 때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기 때문에 사전에 녹음 내용이 유출되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해서다. 구치소에 수감된 최씨도 면회가 금지되는 등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환경에서 관리받는 이유다.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는 박 대통령이나 최씨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라고 검찰은 말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빠짐없이 이행하기 위해 모든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하는 기능을 사용했다고 한다. 녹음 파일이 들어 있는 전화기가 3~4대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과거에 쓰던 전화기들도 버리지 않고 있다가 검찰에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녹음 파일 가운데는 2012년 대선(大選) 이전에 녹음된 파일도 있고, '최순실 게이트'와는 직접 연관이 없는 파일들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이 녹음파일에는 정 전 비서관이 현안마다 최씨와 상의하며 문건을 주고받은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정 전 비서관을 매개로 한 박 대통령과 최씨의 밀착관계를 입증하는 핵심 물증인 셈이다.
 

검찰은 이 녹음파일을 ‘1급 보안’으로 취급하며 외부 유출을 극도로 경계했다고 전해진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최씨에게 ‘정호성 녹음파일’을 들려주며 문건 유출 관련 진술을 이끌어낼 때, 검사가 최씨를 별도의 공간으로 데려가 단둘이 있는 상태에서 녹음파일을 들려줬다고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조사에 입회한 최씨의 변호사마저 듣지 못하게 할 정도로 녹음파일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것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도 정 전 비서관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입증할 녹음파일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검찰이 향후 박 대통령을 조사할 때 이 녹음파일을 제시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입증하는 데 쓰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15개 안팎의 녹음파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씨에게도 ‘1급 보안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선 "재판의 증거 등으로 녹음 파일의 원본이 공개될 경우 큰 파장이 생길 내용도 들어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을 정도다. 일부에선 향후 특검이 녹음 파일들의 내용을 근거로 이번 사건과는 별도의 범죄 혐의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최순실씨가 대통령에게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부탁을 할 때도 그렇고 대통령이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전달할 때도 대부분 정 전 비서관을 거쳤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그와 관련한 기록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99% 입증이 가능하다'는 수사팀의 발표가 나왔던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청와대에 '최후통첩'한 29일을 넘길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이 파일을 공개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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