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방촌 주민의 겨울준비
[신소희 기자]난방이 안 돼 냉기가 도는 한 칸 방. 밥을 해먹느라 가스버너를 켤 때만 조금 온기가 돈다. 냉골 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이불을 두겹으로 깔아뒀지만 몸이 덜덜 떨린다. 이렇게 지난한 삶을 사는 그들이 말했다.

"아직은 살만해요"

3일 오전 7시 남대문 한 쪽방촌.

주택이 밀집한 동네 곳곳 집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패널, 나무 등으로 지어진 쪽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사는 이모(81)씨는 혹시라도 추위에 수도관이 얼어붙을까 전날 저녁 방 앞에 있는 수도꼭지 아래 빨간 대야를 놓고 밤새 물을 받았다.

이씨의 하루는 살얼음이 낀듯한 찬물로 얼굴을 씻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만히 있어도 새하얀 입김이 선명히 나오고 찬바람이 불어오지만 보일러가 없어 따뜻한 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세수를 마치고 손과 귀가 새빨갛게 변한 이씨는 방안으로 들어와 전기난로를 틀어놓고 언 손을 녹였다.

실내에서도 입김이 나오는 6.6㎡ 남짓한 방안에는 전기난로, 전기장판, 이불, 배게, 장롱, 소형 냉장고, 커피포트가 전부다.

이씨는 조금이라도 방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출입문에는 스티로폼을 덕지덕지 붙이고, 방안에 2개뿐인 창문은 길 가다 주운 종이상자와 비닐, 휴지 등으로 틀어막았다.

이 탓에 방안은 낮에도 밤같이 어둡지만 찬바람을 막기 위해선 햇빛을 포기해야 했다.

몸을 녹이고 집을 나선 이씨는 아침밥을 해결하려 칼바람을 뚫고 무료급식을 한다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씨는 "전기난로를 켜지 않으면 앉아 있지도 못할 만큼 추워져 전기세라도 아낄 겸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며 "그나마 비·바람 막아줄 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 양모(78·여)씨의 겨울은 그 누구보다 춥게 보내고 있다. 그나마 올 겨울은 더 춥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전부다.

5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양씨는 주택가를 돌며 폐지를 줍고 있었다.

추위를 막으려 주민들이 쓰다 버린 목도리, 봉사단체에서 받은 마스크, 장갑을 끼고 양말도 두 겹으로 신었지만 온몸이 얼어 손에 쥐었던 종이상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양씨의 한달 수입은 노인연금 20만원이 전부다. 월세 10만원을 내고 전기세, 수도세 등을 내면 사실상 남는 돈은 없다.

양씨는 올해 1월 계단을 오르다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지만 난방 때문에 평소보다 2만원 더 나온 전기세를 벌기 위해선 일할 수밖에 없었다.

2시간동안 동네를 돌아봐야 벌 수 있는 돈은 1000원 안팎이지만 이날은 운 좋게 동네병원에서 버린 약 상자를 주워 3000원을 벌 수 있었다.

양씨는 고물상에서 받은 3000원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차량도 올라가기 힘들어 보이는 언덕길을 올라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양씨가 사는 다세대주택이 보였다.

양씨는 이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다. 3.3㎡ 채 안 되는 방안 내부에는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찬바람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와 곧바로 전기난로를 켰지만 냉기때문에 화재위험을 무릅쓰고 방 한켠에 있던 가스레인지까지 켰다.

양씨는 "아저씨(남편)가 죽은 후 아들이 같이 살자고 했지만 짐이 될까봐 혼자 살기로 마음먹었다"며 "내 선택 때문에 혼자 살게 됐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따뜻하게 살 맞댈 가족이 곁에 있었으면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지역 5개 쪽방촌을 조사한 결과  주민 5명 중 1명은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는 환경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주민 3587명 중 23.4%인 841명이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592명) 없는 상태(249명)로 전기장판 등에 의존하고 있었다.

보일러가 가동이 어려운 주민이 가장 많은 지역은 남대문 쪽방촌으로 543명이 보일러가 고장 난 상태였다. 다음으로 동대문 지역이 239명으로 많았는데, 모두 보일러가 없었다.

보일러 등 난방을 사용 중인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도시가스(66.7%)로 생활했으며, 연탄(17.2%), 전기패널(10.8%), 기름(4.9%) 순으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만난 엄의식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여러 민간 기업들과 단체들의 도움이 저소득층 생활안정 지원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쪽방촌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덜 추운 겨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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