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박근혜 대통령'을 입력하면 '영양주사제'가 연관 검색어로 든다. 태반주사와 마늘주사, 감초주사와 백옥주사…. 온통 걸리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주사제'들이다.

최근 청와대가 지난 2년간 각종 영양주사제를 무려 300개 넘게 산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탓이다. 연일 영양주사제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영양주사를 신봉했다"는 이야기도 세인의 입방에 오르내릴 정도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먼저 태반주사 등 영양주사제를 놔달라 했다'는 대통령 전 주치의의 진술까지 나왔으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실제 박 대통령이 태반주사나 백옥주사 등 각종 주사제를 수십 차례 불법 처방받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영양주사 광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양주사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 전인 200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 강남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대통령의 영양주사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열풍이 이 전보다 오히려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일부 병원은 진료 과목과 관계없이 대통령을 언급하며 홍보와 시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영양주사', 'VIP 주사'까지 등장했다.

SNS 상에는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박 대통령이 오히려 젊어졌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씁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의사말 들으니 '만병통치'

 "백옥주사가 얼마나 좋으면 대통령도 맞았겠어요. 피부도 좋아지고, 노화 방지에도 좋고. 피로 회복에도 백옥주사만 한 것이 없어요."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피로를 호소하며 영양주사에 관심을 보인 기자에게 실 핀을 촘촘히 꽂아 고정한 올림머리의 안내 직원이 "잠시 대기해달라"며 작은 수첩 크기의 초진 진료서를 건넸다.

안내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진료서 빈칸을 채웠다. 개인 신상정보를 비롯해 알레르기 여부, 복용 약물 등 간단한 사항들을 체크했다. 물론 기자인 사실을 감추고 대기업 사원 행세를 했다.

예약한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진료실에서 호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쭈뼛쭈뼛 다시 안내데스크에서 "언제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개를 돌린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 진료받기 전에 상담실장님과 상담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불투명 유리 너머 상담실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힐끗 보였다. 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진료 대기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다 지쳐 상담실 주위를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상담실장을 먼저 만나야 한다'는 이곳만의 룰을 기자가 어기려고 한 탓일까. 간호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순서대로 호명한다"는 짧은 몇 마디로만 토해낸 뒤 안내데스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레 명성을 떨치는 병원인 만큼 효율적인 진료시스템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진료 순서를 애써 단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투명 유리문이 열리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자 이름을 호출했다. 자신을 상담실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불투명한 유리문을 붙잡고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이곳 상담실장들의 외모가 유독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피부가 탱탱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1평(3.3㎡) 남짓한 상담실에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향긋한 커피 향도 진동했다.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커피숍이지만, 이곳은 분명 피부과 상담실이었다.

상담실 주위를 둘러보다 한쪽 벽에 걸린 피부 시술 전후 비교 사진과 알 수 없는 영문이 빼곡하게 적힌 인증서들에 시선이 멈췄다. 맞은편 벽면에는 환율을 실시간 반영하는 환율거래표가 나부꼈다.

상담실장은 행색을 살피는 듯 잠시 기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영양주사제 이름과 효능을 빼곡히 모아놓은 안내 책자를 건넨 뒤 조목조목, 거침없이 설명을 쏟아냈다. 질문을 하나 하면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듯 막힘없이 척척 답변을 내놓았다.

 "만성피로나 노화 방지에는 백옥주사가 가장 효과가 뛰어난데, 태반(주사)이랑 각종 비타민과 마그네슘까지 섞은 칵테일 주사를 맞으면 피로회복뿐만 아니라 피부도 좋아지고, 탄력도 생겨요."

◇효과 보려면 10회는 맞아야…

상담실장은 또 정기적으로 맞아야 효과가 크다며 투약 횟수를 늘릴 것을 추천했다.

 "한두 번 맞으면 효과가 크지 않아요. 꾸준히 맞아야 눈에 띄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죠. 저희 병원에는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러 오는 회사원들이 꽤 많답니다."

기자가 잠시 머뭇거리자 '총 10회 정기권을 끊고, 현금으로 결제하면 20% 저렴하다'는 친절한 설명이 뒤따랐다. 또 근무하는 회사 내 게시판에 관련 글을 게재하면 원하는 주사제를 1회 무료로 놓아준다고도 했다.

안내 책자에 찍힌 각종 영양주사제들의 가격은 7만~20만원 선. 이는 보통 수액주사의 두세 배 수준으로 주사제를 종류, 투약 횟수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패키지 정액권의 경우 30만~70만 원인데 여러 주사제를 혼합하거나 투약횟수가 많으면 가격이 점점 올라간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영양주사 처방도 가능하다고 했다.

 "피 검사나 다른 검사를 하고 나서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형 영양주사 처방도 가능해요. 오죽 좋으면 대통령도 수시로 맞았겠어요? 저도 가끔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칵테일(주사) 해서 맞기도합니다."

상담실장은 20여 분 가까이 진행된 상담이 끝날 때까지 '대통령도 맞았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기자가 상담실장에게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다'고 요구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정액권이나 맞춤형 주사 처방을 받을 것도 아닌데 굳이 의사 진료까지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재차 요구하자 마지못해 진료실로 안내했다.

의사에게 "오남용이나 부작용이 있지 않으냐"고 묻자 "특별히 약물을 복용하거나 지병이 없으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거듭 부작용에 관해 언급하자 의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도 맞았겠느냐. 부작용 없고, 효과도 좋다"고 자신했다. 진료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의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진료실을 나오자 상담실장이 다시 한번 "효과가 좋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당부했다.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피부과에서 영양주사제는 이미 '만병통치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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