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 "계란 두 판에 라면도 한 박스 샀어요. 통 불안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주부 노모(40·경기 성남시) 씨는 장을 보러 나갈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생필품 가격에 깜짝깜짝 놀란다.

서울의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8) 과장 가족은 요즘 외식을 아예 끊다시피 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두 딸을 둔 김 과장은 맞벌이를 하는데도 양육비 대랴, 전세 대출금 갚으랴 갈수록 팍팍해지는 생활에 가슴이 답답하다.
생활비를 아낀다고 식사를 가급적 집에서 해 먹지만 야채, 생선, 과일 등 비싼 식재료 가격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시중은행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는 40대 A씨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희망퇴직 신청서를 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A씨는 갈수록 악화되는 경기 상황을 보면서 "조금만 더 버텨볼걸"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건강을 회복한 후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경기가 안 좋아 그마저도 고민이다.

송년 모임과 가족행사로 즐거워야 할 연말이지만 A씨처럼 현실 고민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기 상황을 살펴보면 이같은 우울함은 더 커진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소득은 거의 그대로인데 물가는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은행 잔고는 주는데 빚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의 저금리 기조는 미국의 금리 인상 영향 탓에 뜀박질하고 있다.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으로 정든 회사를 떠나는 직장인들의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내년 경제는 더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뉴스를 장식하면서 여러모로 팍팍한 연말이 되고 있다.

◇ 소득은 쪼그라들고 빚은 '빛'의 속도로 늘고

모든 게 변해도 소득은 변함이 없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줄었다.

통계청의 올해 3분기(7∼9월) 가계동향을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4만5천원으로 1년 전보다 0.7% 증가했다. 늘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올해 3분기에 0.1% 줄었다. 돈을 쓰다 보면 내 벌이가 줄었다고 느끼게 된다.

지난해 3분기에 0%를 기록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0.2%, 올해 1분기 -0.2%, 올해 2분기 0% 등 0% 내외를 오락가락했다.

소득에 비하면 빚은 빛의 속도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천295조7천531억원이다.

가계부채는 올해 들어 9개월동안 92조6천539억원(7.7%) 늘었다. 증가액이 작년 같은 기간 79조6천360억원보다 13조179억원이 많았다.

가계부채는 10월과 11월 대출 실적을 고려하면 1천300조원을 넘었다.

◇ 구조조정 칼바람에 최대 규모 희망퇴직…살벌한 연말

30대 그룹은 올해 들어서만 직원 1만4천여명을 감원했다. 특히 구조조정 중인 조선 3사에서만 6천여명을 줄였다.

30대 그룹의 인력 고용 규모는 98만명대로 떨어졌다. 작년 말까지 100만명선을 유지하던 양질의 일자리가 불황의 직격탄을 받은 것이다.

삼성그룹 내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22개 계열사의 9월 말 기준 전체 인원은 21만2천496명으로 작년 연말(22만2천11명)보다 9천515명(4.3%) 감소했다.

현대중공업[009540]은 작년 연말 3만7천807명에서 올해 9월 말 3만3천697명으로 4천110명(10.9%)을 줄여 인원 감축 규모로는 30대 그룹 중 삼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삼성중공업[010140],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042660] 등 조선 3사에서만 이 기간에 6천131명의 인력이 줄었으며, 기계·설비까지 포함한 조선·기계·설비업종은 8천962명(8.8%)의 인력이 회사를 떠났다.

금융권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2천800명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KB국민은행을 포함해 금융권도 올 연말까지 수천 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 공공요금·라면 등 생필품에 계란까지 급등

소득은 제자리거나 주는데 지출을 줄이기 어려운 공공요금은 물론 식료품값까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달 30일부터 대구 시내버스·도시철도 요금은 교통카드 기준으로 150원(일반인) 오른 1천250원이 된다. 2011년 7월 이후 5년 6개월 만의 인상이다.

부산시도 내년 2월부터 도시철도 요금은 8.3%, 경전철 기본요금은 16.7% 인상할 계획이다.

전국 곳곳에서 상·하수도 요금도 줄줄이 인상이 예정돼 있다.

내년 1월부터 충북 충주시가 상수도 요금을 평균 9% 올리고 경기도 과천·안양·의정부·양주, 동두천·가평 6개 시·군이 3.6∼18% 인상한다. 강원도에서는 강릉시가 상·하수도 요금을 5∼30% 올린다.

라면·맥주·계란 등 서민들이 즐겨 먹는 식료품 가격도 오름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집계를 보면 22일 기준으로 계란 한판(30알) 소매 가격은 평균 7천37원으로, 평년(5천662원)보다 24.2%나 높다. 일부 지역에서는 한판에 평년 대비 50% 오른 8천500원까지 치솟았다.

농심[004370]은 최근 라면 권장소비자가격을 5.5% 올렸다. 국내 베이커리 업계 1위 파리바게뜨는 이달 193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6.6% 인상했다.

지난달 오비맥주에 이어 하이트진로[000080]도 27일부터 모든 맥주 제품 출고가를 6.3% 올린다.

◇ 치솟는 금리에 빚은 어떻게 갚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등 미국발 요인 탓에 시장금리가 치솟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큰 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근간이 되는 신규 코픽스 금리는 지난 9월부터 석 달 연속 상승세다. 9월 0.04%포인트, 10월 0.06%포인트, 11월 0.1%포인트 등 석 달간 0.2%포인트가 올랐다.

우려되는 대목은 매달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픽스에 연동된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상승세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10월 말에 견줘 지난 16일 금리가 0.36%포인트 상승하는 등 4대 시중은행 모두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은행의 평균금리는 지난 8월 2.74%에서 11월 3.28%로 석 달 만에 0.54%포인트나 상승했다.

변동금리보다 금리 수준이 높은 고정금리도 치솟고 있다.

4대 은행의 고정금리는 10월 말 평균 3.03~4.31%에서 지난 16일 3.50~4.62%로 껑충 뛰었다.

금리가 오르니 개인 채무 역시 늘어만 간다.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은행의 11월 주택담보대출은 3조1천633억원으로, 성수기였던 10월보다 2천901억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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