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마치 잘 구성된 소설을 듣는 기분입니다."

지난 7월 2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퀄컴이 타사의 특허를 착취하는 등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퀄컴의 법률대리인 임영철 변호사가 처음 던진 한마디였다. 그러면서 그는 공정위 조사가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시작된 것일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특허권을 남용한 미국 통신칩 제조업체인 퀄컴에 역대 최대 과징금인 1조300억원을 부과한 것.

공정위는 28일 "경쟁 칩셋 제조사에 특허 사용권을 부여하지 않고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로부터는 칩셋 공급을 볼모로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한 퀄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조300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퀄컴은 모뎀 칩셋 판매와 특허 로열티로 매년 약 251억 달러(30조3283억원)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이 중 한국시장에 대한 매출액은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시장에서 해마다 6조원 안팎의 로열티를 챙겼다는 의미다.

공정위에 따르면 퀄컴은 경쟁 모뎀 칩셋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칩셋 제조·판매에 필수적인 특허권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한했다.

표준화 기구는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표준 특허를 가진 업체들이 이를 무기로 횡포를 부리지 않도록 프랜드(FRAND)확약을 요구하고 있다. 프랜드는 특허이용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특허권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그러나 퀄컴은 프랜드를 준수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삼성·인텔·비아 등이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에 대해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경쟁 칩셋 업체에 특허권을 제공할 경우 휴대폰 제조업체에 특허료를 받는 모델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퀄컴은 완전한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요청한 미디어텍 등 경쟁 칩셋 업체에게는 판매처를 제한하거나 모뎀 칩셋의 사용 권리를 제한하는 등 불완전한 계약을 맺기도 했다.

퀄컴은 자신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휴대폰 제조업체에는 모뎀 칩셋을 공급하지 않기도 했다.

모뎀 칩셋 공급이 차단되면 휴대폰 제조업체는 사업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므로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조건이 부당하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실제 퀄컴 칩셋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휴대폰 제조업체는 퀄컴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협상을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퀄컴은 휴대폰 제조업체에 무상으로 교차 라이선스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자기 특허를 라이선스 주면서 상대방 휴대폰사가 보유한 특허를 정당한 대가도 지급하지 않은 채 교차 라이선스하도록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휴대폰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표준필수특허를 확보해도 퀄컴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없다.

이에 공정위는 모뎀칩셋사가 요청하는 경우 특허 라이선스 계약 협상에 성실히 임하도록 시정 명령을 부과했다.

모뎀칩셋 공급을 볼모로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고 관련 계약조항을 수정·삭제토록 했다.

또 휴대폰 제조업체의 요청이 있는 경우, 기존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재협상 하도록 했다.

퀄컴은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휴대폰 제조업체와 칩셋 업체에 알리고 신규 계약이나 계약 수정·삭제 시 그 내용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퀄컴을 배타적 수혜자로 하는 폐쇄적인 생태계에서 산업 참여자가 누구든 자신이 이룬 혁신의 인센티브를 누리는 개방적인 생태계로 돌려놓기 위한 조치"라며 "표준필수특허 남용 등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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