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의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다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특검팀이 문건에 관한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순실 씨(60·구속 기소)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작업을 사실상 주도했고, 실제 이 블랙리스트가 최 씨의 사업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인사를 배제하는 데 이용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리스트를 받은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관계자들이 “청와대 구중심처(九重深處)의 아이디어”라고 추측했던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블랙리스트'는 지난 2014년 문화계 인사에 대한 검열과 지원배제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문건으로, 여기에는 총 1만명에 육박하는 문화예술인이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이 무성했던 문건의 제작 과정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폭로하면서 자세히 알려졌다.

유 전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퇴임 직전인 2014년 6월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 수시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모철민 수석(당시 교육문화수석)이나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날 블랙리스트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이었으며, 당시 정무수석은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이다. 특검은 또 리스트를 문체부 등에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현 주프랑스 대사)을 소환 통보하는 등 당시 청와대 및 문체부 관계자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최 씨가 블랙리스트 작성을 구상한 것은 자신의 차명회사를 내세워 문체부가 문화예술단체에 기금 형식으로 지원하는 각종 예산과 이권을 따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특검은 보고 있다.

여기에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좌파로 규정지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속내가 덧붙여지면서 블랙리스트 작성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명단에 포함된 인사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정대로라면 문건의 제작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도하고, 교육문화수석실이 문체부 차관 등을 통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제작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조사를 받지 않은 조윤선 장관과 김종덕 전 장관 등을 상대로도 특검의 소환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종책임자로 지목된 김 전 실장 역시 곧 소환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블랙리스트 작성 시기로 추정되는 2013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맡았던 모철민 현 주프랑스대사(58)도 소환 통보를 받았다.

모 대사는 파리를 떠나 2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으로, 특검팀은 모 대사와 연락을 취해 일정이 조율되는 대로 29일에라도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문화연대와 예술인소셜유니온, 서울연극협회 등 12개 문화예술단체는 문건과 관련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모 대사 등 9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와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한 바 있어 관계자들의 처벌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영화계 좌파성향 인사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한 내용이 적혀있는 등 블랙리스트 작성을 직접 지시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담겨있다. 특검팀은 비망록이 증거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김 전 수석의 유족을 통해 원본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를 포함해 각종 의혹의 핵심인물인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5·구속기소)도 24일부터 사흘 연속 불러들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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