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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인문학 특강] "행복으로 가는 길"
심일보 기자  |  jakys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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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5  11: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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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당 조만식 선생 추모 강연하는 김형석 교수
[심일보 대기자] 1920년 북한 대동 출생, 만으로 96세.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불리는 분이기도 하고 지금의 50~60대에게는 감동을 주는 수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필자가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김 교수의 '철학개론'을 수강한 바 있다. 당시 중간고사 시험 문제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론적으로 서술하시오'

한국 철학계의 대부이자 98세 철학자인 그는 최근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백세가 가까운데도 아직 청춘이다.(편집자 주)

                                                    "행복으로 가는 길"

의 가치로서의 행복은 윤리학의 주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독립시킨 학문이 윤리학이다. 사람에 따라 원하는 가치는 다 다르지만, 행복은 누구나 원하는 삶의 가치다. 선인의 결론은,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다.'는 것. 천재 시인 괴테 역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내 인격만큼 행복하고, 소유하고 또 베풀 수 있다.

내가 중2 때 읽었고,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톨스토이의 동화가 있다. 자신의 땅을 갖고 싶어 하던 러시아의 한 가난한 농부가 귀족과 약속을 한다. 해가 떠서 질 때 까지 농부가 밟고 온 땅을 무상으로 양도해주겠다는 귀족. 다음날 농부는 점심 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죽기살기로 뜀박질한다. 먼 거리를 돌아 해지기 직전에 처음 장소로 돌아와 자신의 땅을 얻게 되지만, 그 땅을 채 사용하기도 전에 탈진하여 쓰러진다. 죽음에 이른 그에게 주어진 땅은 몸을 누일 다섯 자 무덤 뿐이었다.

당시에는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있나' 하고 비웃고 넘어갔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 농부와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나 자신도 그리 살 때가 많았다. 어리석은 그 농부처럼 살지 않았다고 자신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소유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더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면 어리석다. 돈이나 권력을 탐하는 것도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다. 정신적 지도자라 일컬어지는 교수나 종교인들은 명예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을 소유해서는 얻을 수 없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물질적 소유나 권력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권력에 유혹되기 쉽지만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세계를 정복하고 원로회의 의장까지 올랐던 시저는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지만, 그 권력을 더 강화한 황제가 되려다 죽고 만다. 많은 의원들은 물론 시저를 존경하던 브루투스 역시 공화정을 파괴하고 왕위에 오르려는 그를 지원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시저 암살을 모의한 거사 당일, 시저의 아내는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며 원로회의에 나가지 말 것을 권했다. 하지만 당일 원로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할 예정이었다며 꾀자 권력에 혹한 그는 결국 출석하게 된다. 그가 믿었던 브루투스 마저 암살에 가담한 것을 본 시저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끝없는 권력욕에 대한 대표적인 교훈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도 권력을 유지하려다 유사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돈이나 재산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 인격을 팔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전 대통령들 중 박정희는 상이나 학위 등을 거절하여 명예에 초연한 편이었는데, 후대의 김영삼, 김대중은 명예에 연연한 측면이 강했다.

일본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천황이다. 울타리에 갇힌 신세라는 것이 일본측 인사의 말이다. 아키히토 현 일본 천황은 황태자 시절 평민인 '쇼다 미치코'를 사랑했다. 당시 쇼와 천황은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선선히 결혼을 허락했다. 생물학자였던 쇼와는 근친혼이 정신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전 세계가 민주국가로 재탄생하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청혼을 받은 미치코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도피성 유학길에 오른다. 왕실에 갇혀서 평생을 보내기 싫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부친(닛신제분, 쇼다 히데사부로)의 설득 끝에 조건부로 결혼에 동의하는데, 그들이 아이를 얻게 되면 교육기관에 보내는 관습을 버리고 직접 키우겠다는 것과 일반 평민들도 누리는 자유를 일정 부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메이지 이후 첫 평민 출신의 황태자비가 탄생했다.

(하지만 궁내청의 집요한 간섭과 자가 검열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희연에서 그 소회를 밝힌다. 민간인 출신으로 첫 황족이 된데 대해 "나를 받아들인 황실과 긴 역사에 흠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내가 태어난 서민의 역사에 상처를 남겨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인상에 남는 기억으로는 결혼하던 날 아침 부친이 "천황과 황태자의 뜻을 잘 받들라"고 말한 것과,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꼭 끌어안아 주던 일"을 들었다.)

청와대에 18년 거주한 박정희는 갑갑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바람도 쐴 겸 차나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공화당 사무총장 집을 찾았다. 들어가며 보니 너무 호화롭게 살고 있었겠다. 바로 발길을 돌려 청와대로 돌아온 후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이라며 그를 모든 공직에서 사퇴 시켰다. 김대중, 김영삼은 상대적으로 명예욕이 커서 명예 학위 등에 집착했다. 정신적 지도자 역시 그러면 안 된다. 희생과 봉사가 곧 명예다. 명예란 원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선사하는 것이다.

욕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인생의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 많은 이들이 쉽게 빠지는 것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다. 교수로 재직하며 아내, 모친, 월남한 동생 2명, 자녀 6명을 건사하며 사느라 힘들었다. 당시에는 모든 일을 할 때 대가를 우선 따지게 되더라. 선택의 기준이 돈이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대구에서 제자가 찾아와 강의를 청했다. 대구 지역 중고등학교 선생들이 600~700명 참석하는 곳이었다. 마침 S 그룹과의 선약도 있고, 지방 강의가 돈이 되지도 않았기에 거절을 했다. 그때 돌아서던 제자의 얼굴에서 믿었던 은사에 대한 실망의 표정을 읽었다. 민망했다. S 그룹과의 일정을 조절하여 대구로 내려갔다. 교통편 제공에 높은 강사료를 주는 서울에서의 강의에 비해 하루를 꼬박 보내고 손에 쥐는 사례도 적은 강의였다.

서울역을 거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 생각해보니 그 선택에 만족감이 들더라. 돈 때문에 일하기 보다 오로지 그 일 하나를 보고 일하자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우선하면서 내 인격이 조금은 귀해졌다.

80살이 넘어가면서는 나 때문에 몇 명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생겼다. 일의 목적이 희생과 봉사로 바뀌더라. 그렇게 20년 가까이 사니까 내가 조금 철이 들었다. 내 머리는 이발사가, 치아는 치과의사가, 안경은 안경점에서, 옷은 호주든 어디든 그 누군가가 생산한 직물에서, 구두는 어느 대륙의 목축업자가 생산한 가죽에서, 이렇게 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전부 남의 손길이 닿았다. 내 것인 양 여기는 지식 또한 사실은 먼 과거의 스승과 가까운 은사들로부터 유래했다. 인생의 99%가 남에게 받은 것이다. 1%만 해도 감사하다. 적어도 한가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돈 때문에 인격을 파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김영란법'과 상관없이 살 수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돈, 권력, 명예를 소유하려고 하다가 가정에는 불화가 오고 개인적으로는 인격이 파탄에 이른다. 재물은 내 인격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베풀어라.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하는 것이다. 명예는 봉사의 대가로 따라온다.

선진국에서는 정신적 가치를 찾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꼽는다. 예술과 정신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모른다면 후진국이다. 이탈리아에서 기업가보다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다. 관광수입 50억불 중 약 10% 정도는 그의 덕이지 않을까 싶다. 라파엘로의 작품은 다수가 유출되어 그 중 대부분은 미국에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역시 프랑스를 위시한 주변국으로 빠져나가고 최후의 만찬이 거의 유일하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벽화가 주요 작품이기에 오늘날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요 성당들에는 그의 조각작품을 안배한 좌대를 먼저 만들어둘 정도였을 정도의 위대한 작가다.

시스티나 성당은 언제 찾아가도 만원이다.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밀려드는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어떤 기업가도 미켈란젤로가 창출한 예술의 가치를 따라잡지 못한다.

학문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세계를 주름잡았던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라. 알렉산더의 업적은 역사 기록에나 겨우 남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은 23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도 그 위력을 발휘한다. 어느 것이 더 위대한가?

선진국은 문화적 혜택과 정신적 가치를 즐길 줄 안다. 지금 선진국이라 할만한,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과 일본 정도다. 러시아는 공산주의로 인해 100년 이상의 세월을 허비했는데, 현지를 방문해보면 문화적 후진국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언급한 선진국들의 공통점이라면, 국민의 80%가 100년 이상 독서를 한 나라들이다.

한때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 세계를 주름잡았던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 지금 그 나라들에 가면 책 읽는 국민을 만나기 어렵다. 선진국에서 이탈한 것이다. 독서는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의 후진성은 독서인구가 없다는 것에 기인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거의 유일한 독서 국가이다. 한국은 약간의 독서인구를 갖고 있을 뿐이며, 중국도 평균적으로 봐서는 후진국이다.

독서와 문화, 예술활동에 동참해야 한다. 전경련 회장 추대 문제로 가졌던 만찬에 대한 소감이 오래된 고급와인에 대한 품평이어서는 곤란하다. 와인은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지도층에서도 학문과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50대가 되면 책도 읽고 정신적 가치를 찾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부자국가가 선진국은 아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선진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신적 가치에 동참하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아카데미에도 자주 참석해야 한다.

S 대 강의 후에 "빈부 격차가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강의였기에 공산주의와 연관 지은 질문일 수도 있어서 대답이 조심스러웠다. 빈부의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 교수인 나는 (경제적으로는) 부자가 아니다. 차도 없어 걸어 다닌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지적 역량은 떨어지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동창생의 승용차에 편승할 형편이라면 그게 불공평한 상황인가? 물론 아니다. 나의 학문과 그의 승용차는 등가로 교환할 수 없는 자산이다. 물적으로 더 좋은 것을 소유했다고 부러워해야 할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시인이나 학자가 가진 정신적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가져야 행복하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몇 번에 걸쳐 재출발을 할 기회가 있다. 신체는 늙지만 지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정신은 늙지 않는다. 인생을 생노병사의 과정으로 본다면, 생전과 사후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늙는 걸 누구나 싫어하지만 우리는 육체적으로 20대 중반부터 이미 늙기 시작한다. 20대 중반에는 어느 시점부터 피곤을 느낀다. 30대가 되면 배가 나오고, 40대가 되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성인병 조짐도 보인다. 50대가 되면 기억력 마저 깜빡 깜빡이다.

육체는 일찍 성장하여 서서히 늙어가고, 정신은 서서히 성장하여 70대 중반 이후 정점을 찍고 급격히 쇠락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은 저하되지만 사고력은 오히려 높아진다. 노력이 따르면 정신은 정점에서 쇠락하지 않고 80~90까지도 연장할 수 있다. 인생 후반기 영역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50대가 되면 인생 후반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나와 더불어 한 때 '철학계의 삼총사'라 불렸던 안병욱, 김태길 교수와 국회의사당 모임을 마친 후 차를 나눈 적이 있다. 80 고개를 넘으면서 우리 인생에서 계란노른자와 같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기가 언제였을까 되돌아 보았다. 가장 생산적이고 창의적이었던 나이는 대략 60~75세 때였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나 역시 철학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은 70세 이후 발간했다. 지적 역량을 유지하고 있으면 사회의 필요도 따라온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60까지는 철이 안 들었던 것 같다.

성장의 조건을 갖추려면 우선 공부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장관이다 국회의원이다 하며 한때 날리던 사람들을 만나보면 겉모습부터 쇠락해있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녹슨 기계와 다르지 않다. 쇠락은 나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끌어야 한다. 언론을 통해 정치 지도자들이 범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볼 때가 많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자신을 임명한 사람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있더라. 직장생활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직을 떠나서 해야 할 행동이다. 사회생활은 인간관계가 전부다.

27세에 교사가 되었고, 젊은 시절 교감으로 발령 받았다. 한 동안 나만 잘났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을 가까이 모시고 그 분의 인격을 접하면서 많이 반성했다. 동아일보 설립, 중앙중고등학교 중수, 고려대학교 인수 등의 일에 깊게 관여하면서도 본인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고, 철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촌은 아첨꾼과 비방꾼 그리고 편가르기 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 반면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도왔다. 인촌 선생 덕분에 조금은 철이 들었다.

우리 정치는 편가르기가 전부다. 옳은 편, 국가에 이익이 되는 편에 서야 하는데 개인에게 득이 되는 곳만 찾는다.

내가 떠나고 나면 서운하게 여길 사람이 많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지난 100년을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게 내세울만한 사람을 꼽아 보았다. 사람이기에 공과는 있기 마련인데 상대적으로 과보다 공이 큰 사람. 그 중에 한 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개인의 영달을 떠나 국민에게 최선을 다한 분이다. 정치계에는 공과가 비슷하여 인물이 없다. 교육계는 인품 좋은 분은 많은 반면 업적을 남긴 분이 안 보인다.

기업가 중에서는 유일한 선생을 꼽았다. 흠이 거의 없는 분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꾼을 양성하였다. 아버지의 뜻에 의해 9살의 나이에 혈혈단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31세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내한해서 시작한 것이 제약회사 유한양행이다. 이승만과 친분이 있었지만, 지도자가 부패하면 나라에 희망이 없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정치자금 헌납을 거부했다. 그 바람에 세무 사찰을 받아야 했지만, 내야 할 것 이상으로 세금을 납부해 왔기에 털어서 먼지 한 점 나오지 않았고 나중에는 오히려 표창을 받았다. 사후 유족에게 남긴 최소한의 생활자금 외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렵지만 지도자에서 시작하여 온 국민이 나라 걱정을 우선 한다면 해결 가능하다. 전부 자기 걱정만 앞세우는 나라는 선진국의 자격이 없다. 이만큼이라도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덕이다. 3.1 운동, 해방, 6.25 전쟁 등의 과정에서 내 한 목숨보다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온 국민에게 공감되었는데 그 기운이 우리를 이만큼이라도 연명하게 한 것이다.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손기정 옹 같은 분은 나라 없이 살아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상금으로 받은 돈마저도 세금을 더 내려고 했다. 국가가 베풀어 준 혜택에 대한 나름의 방법인 것이다. 나는, 우리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에서 받아온 것을 잊어버린 지도자, 교육가, 기업가 종교인들이 판을 친다. 다시 한 번 나라를 걱정하자.

몇 해 전 어느 대학에서 상을 받고 답사를 하게 되었다. 주는 것이니 받기는 하는데, 특별한 업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훌륭한 분들이 참 많은데 그나마 나에게 자격이 있다면 오래 사느라 고생한 것이다. 나의 모친은 내가 스무 살까지 사는 것만 봐도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런 약골이 가난, 일제 치하, 공산 치하, 월남, 6.25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이렇게 살아남았다. 인생이 고해라고 하지만, 고생이 없으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다.

나이든 딸들은 6남매를 키우느라 엄청난 가난을 헤쳐온 아내를 두고 왜 그런 고생을 자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마 아내는 똑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다. 천지간에 이렇게 번듯한 아들 딸들을 내어 놓았지 않은가. 사랑이 없으면 고해이지만, 사랑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가장 행복한 의사는 환자를 정말 사랑하는 의사이다. 교육자는 씨를 뿌리고, 그 씨가 자라 맺은 열매를 거두는 이는 제자다. 제자를 사랑한 스승은 버림받지 않는다. 한 제자가 상을 받는 자리에 축하 인사차 참석했다. 도착하자 제자가 코트를 받아 걸고 안내를 자청한다. 오늘의 주인공인데도 살뜰히 챙겨주더라. 행사를 마치고 나니 코트 주머니에 두둑한 용돈 봉투까지 담아주었다. 인생이 별거 없다. 어릴 때 세뱃돈 받는 재미처럼 나이 들어 용돈 받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제자를 사랑한 것 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것이 제자 같다. 미국에서 의사로 정년 퇴직한 제자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80이 넘었기에 선생님은 벌써 돌아가신 줄 알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TV에서 내 모습을 접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단다. 고 2~3 때 토요일 오후마다 불러서 조언해 준 것이 평생을 살아나갈 힘을 주었단다. "힘든 일을 이기고 나면 행복이 찾아온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팔순의 제자들 일곱 명이 큰 절을 올리더라. 내생에 다시 교단에 서면 정말 진심을 다해 제자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가 국민을 위해 희생, 봉사한다면 존경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아쉽다. LA 근교 리버사이드 시티의 시청 앞 광장에 가면 동상이 몇 개 있다. "I have a dream!"으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남긴 마틴 루터 킹 목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흑인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가 목숨을 바친 분. 그의 꿈은 결국 이루어졌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보면 그의 기분이 어떨까?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도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다.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국민의 능력을 키울 방도를 찾아 도미했다가, 이곳에서는 오렌지 농장의 일꾼으로 취업했다. 정직하고 근면한 그의 일 처리는 농장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귀국과 해외 생황을 반복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의 일생이 이어졌다. 후대에 그가 한민족의 정신적 지도자로 성장하였음을 알게 된 시민들이 그를 기념하여 이곳에 동상을 세웠다. 백인 촌에 서 있는 흑인과 한국인과 인도인의 동상은 그들이 민족을 떠나 인류의 표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개인인 나로서의 인생에도 최선을 다하되,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는 심정으로 마음 한 켠에 그 희망의 동상을 가져야 한다. 내 인생이 밝고 사회에 모범이 되는 삶, 최선의 인생을 살아 남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맛보길 기원한다.

서울대 김태길 교수와 숭실대 안병욱 교수는. 평생의 친구였다. 80 중반이던 어느 날, 안 교수가 1년에 4번 정도 만나보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김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나이가 많아서 우리 중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게 될 텐데, 만남을 가지다가 그런 일을 당하면 너무 힘들 것이라는 판단. 그래서 마음만 나누기로 했다. 이윽고 김 교수가 2009년, 안교수는 2013년 세상을 떠났다. 모친과 아내를 보냈을 때는 집이 텅 빈 것 같아 한동안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두 친구를 보내고 나니 그만 온 세상이 빈 것처럼 느껴져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마음을 다 잡고 나에게 남은 임무, 두 분의 뒤를 이어 마무리를 한다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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