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는 한해였다.

 
 올 한 해가 정말 길고 힘들었던 분들이 있다.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대기업 회장님들.

검찰에서 줄줄이 불려가 피의자로 조사받고, 구속되고 재판받고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는 한해였다.


많은 재벌 총수가 횡령·탈세·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등이 현재 구속됐거나 구속집행정지 상태에 처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한전선 오너인 설윤석 사장은 최근 58년간 3대에 걸쳐 지켜온 경영권을 내놓게 됐다. 또 최근 웅진·STX그룹 등이 부실로 잇따라 와해되고, 그 밖의 경영위기나 개인비리가 불거지지 않은 총수들도 노화·건강 문제 등으로 경영권 승계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화그룹은 최대 주주인 김승연 회장에게 약 22%의 지분이 있고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력마케팅실장이 4%, 차남 김동원씨와 삼남 김동선씨가 각각 1.6%를 가졌다. 현재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실장이 지난 8월부터 유럽에서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김 회장 공백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자리를 비우면서 신규사업이나 대규모 투자 등 그룹의 경영공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원회를 출범해 사업상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놓았지만 사업 육성이나 성장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추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김동관 실장은 아직 경영 수업을 받는 단계고 한화큐셀 본사가 있는 독일에 거주해 당분간 주요 의사결정은 비상경영위원회에서 전담할 전망이다.


지난 5월 CJ는 일주일 새 여섯 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이재현 CJ 회장의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혐의를 잡기 위해 CJ 본사와 이 회장 자택 외에도 서울지방국세청,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은행ㆍ증권사 등을 쉴 새 없이 뒤졌다. 대우건설은 직원의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9월 압수수색을 당했고 지난 8월에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압수수색의 수모를 겪었다. 지난 5월과 지난해 10월에도 압수수색을 피해가지 못했다. 대우건설 직원들은 다른 건설사에 비해 유독 압수수색이 잦은 데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효성 또한 마찬가지다. 검찰이 효성그룹의 탈세의혹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 앞서 국세청은 효성그룹에 대한 약 5개월간의 세무조사를 진행한 뒤 역외탈세, 해외자금 도피, 배임·횡령 등의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에는 조 회장과 이상운 효성 부회장, 조 회장의 개인재산 관리인인 고모 상무, ㈜효성이 포함됐다.


검찰은 효성그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하고 지난 10월11일 효성그룹 본사와 효성캐피탈, 조석래 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또한 압수수색에 이어 지난 14일부터는 효성그룹 임직원들을 소환해 조사 중이다.


효성그룹의 승계는 형제들의 경쟁구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석래 회장의 둘째인 조현문 전 중공업부문 사장이 올 초 변호사활동에 전념하겠다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 셋째인 조현상 부사장이 5차례에 걸쳐 효성 주식 약 30만 주를 취득했다. 그러자 장남인 조현준 사장은 효성 주식을 40만주 가량 사들인 것. 장남 조 사장의 지분은 9.14%, 최대주주인 조 회장에 이어 지분 8.76%인 셋째를 제치고 2대 주주에 올랐다. 장남과 막내가 앞다투어 주식을 사 모으자 재계 일각에서는 경영권 경쟁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어쨌건 이들 모두 재벌 총수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면서,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에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

부도 위기를 숨겨 투자자 손실로 이어진 동양그룹의 회장님은, 달걀을 맞고 안경까지 벗겨지는 망신을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답답한 심경을 내비치는 회장님도 있었다. 올 1월 1심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된 최태원 SK 회장은 최근, "후회스럽지만 억울하다"며 "부끄럽게 돈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오너가 아니어서인지, 직원들의 원망 섞인 비난과 불운한 연말을 보내야하는 회장님도 있다.

이석채 前 회장.

지하철 5~8호선 영상광고·쇼핑몰 등을 운영하는 스마트몰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KT 사옥 39곳을 감정가보다 헐값에 매각해 회사 측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OIC랭귀지비주얼(현 KT OIC)과 ㈜사이버MBA(현 KT이노에듀)를 KT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적정 가격보다 비싼 값에 인수해 회사에 손실을 준 혐의다.

이 전 회장은 이와 함께 임원에게 과다 지급한 상여금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계 로비 의혹도 짙다.


현재 검찰은 야당 의원이 자신의 지인이 대표로 있는 IT업체를 지원토록 KT에 압력을 넣은 정황이 담긴 문건을 확보, 이 전 회장을 상대로 투자를 지원한 배경과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유통업계 빅3, 2세 회장님들은 국회 출석 요구를 무시하다 괘씸죄에 걸리기도 했다.

경제에 악영향을 주겠다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로, 검찰청사와 법정을 오간 많은 재벌 총수들.

올해는 유독 이들에게 악몽 같은 한 해였다.


<심일보 편집국장>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