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피청구인(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그날(세월호 참사일)의 보고, 지시에 대한 것은 기재가 돼 있다. 그날 제가 밝히라고 말씀드린 것은 피청구인의 기억을 살려서 당일의 행적을 밝히라는 것 이었다”

2014년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000일인 10일, 헌재 이진성 재판관은 답변서를 받자마자 “헌재가 요구한 데 비해 내용이 부족하다”고 이같이 밝히고 다시 제출하도록 석명했다. 답변서는 이날 공개변론이 열리기 직전인 오전 9시 제출됐다.

이 재판관은 “우선, 피청구인의 세월호 침몰에 대한 최초 인지시점이 언제인지, 그것이 여기(답변서)에는 나와 있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답변서에 따르면 (오전) 10시에 보고를 받아서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기재가 돼 있다”며 “그 전에 TV 등을 통해서는 (오전) 9시 조금 넘어서부터 보도가 되기 시작했는데, 피청구인은 TV를 통해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그런 부분을 밝혀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재판관은 통화기록에 대한 부실한 제출을 지적했다. 이 재판관은 “답변서에 보면 (김장수)안보실장과 수차례 전화를 했다고 돼 있다”며 “그런데 답변서에 첨부한 3가지 자료는, 국가안보실에서 피청구인에게 서면으로 보낸 보고서이며 그 밖의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12시50분에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통화를 했다며 통화기록도 있다고 (답변서에 기재)돼 있다”며 “안보실장과는 수차례 통화를 했다고 돼 있는데 통화기록은 기재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김장수 전 안보실장과 통화한 내용에 대한 근거까지도 제출하라는 석명이었다.

한편 이날 제출된 답변서가 대리인단과 사전 논의 등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엇박자'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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