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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결국 역사 속으로
이미영 기자  |  leemy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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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1  1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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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 기자]'월드와이드웹(www) 기반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당시 최고의 인기 웹사이트는 다름아닌 미국의 야후(Yahoo!). 현대적인 포탈사이트의 기본구조를 확립한 야후는 한때 인터넷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야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구글과 같은 통합 검색 서비스, 네이버나 다음 등의 맞춤형 포탈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야후는 내리막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2005년을 전후부터 야후의 이용자는 급감했고, 2013년 1월에는 야후코리아가 철수하면서 한국내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미국 본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실적부진에 시달리던 야후는 2016년 7월 인터넷 서비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사업을 미국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핵심인 인터넷 사업을 미국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존 커뮤니케이션에 넘기기로 한 야후는 매각 절차가 완료되면 야후파이낸스, 야후스포츠 등 남은 사업들은 ‘알타바’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

알타바는 ‘대안’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alternative’와 중국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합성어로 알려졌다.

마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도 모두 물갈이된다. ‘야후’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던 인터넷 포털이 더는 야후로 불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알타바로서의 야후는 투자회사로 탈바꿈한다.

야후가 껍데기만 남겨놓고 사명(社名)부터 경영진까지 모든 것을 바꾸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0년대 초까지 업계 최강자로 군림했던 그 야후의 존재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야후는 1994년 출범한 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검색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구글의 출현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주는 구글은 날로 성장했고, 이와 대조적으로 야후는 번잡한 광고, 문어발식 콘텐츠로 외면 받았다.

야후는 2012년 구글 출신 메이어 CEO를 영입해 혁신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메이어 CEO는 야후의 6번째 CEO이자 두 번째 여성 CEO였다.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2015년에는 미국 여성 CEO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인물로 선정돼 구설에 올랐다. 그는 모바일에 집중해 야후를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뉴스 요약 앱 ‘섬리’, 블로그 서비스 ‘텀블러’ 등을 잇달아 인수한 것도 모바일 집중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구글, 페이스북으로 이미 대세가 넘어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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