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 충주시장
우리나라처럼 양극화된 나라도 없다. 양극화의 근저엔 남한과 북한이 있다. 남한에는 호남과 영남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가 있다.

우리나라 정치세력도 양극화 되어 있다.
집권세력과 야권세력이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며 확연히 갈라섰다.

여권세력은 야권세력을 빨갱이, 종북세력으로 매도한다. 반대로 야권세력은 여권세력을 일제시대 잔존세력, 수구골통으로 매도한다.

양극화의 뿌리는 광복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계층도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
기득권층과 소외계층, 사용자와 노동자, 노년세대와 청년세대, 가진자와 못가진자 다시말해 금수저와 흙수저가 양극화 되어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선거때만 되면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비교적 급하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사람들을 보고 "빨리 빨리"하며 웃는다. 좋게 말하면 화끈한 것이다.

우리의 성급한 성격이 국가발전에 기여도 많이 했다. 경제발전도 "빨리 빨리"가 크게 한 몫을 했다.

문제는 화끈한 성격때문인지 정치투쟁도 중간지대를 용납치 않고 극렬하다는 것이다. 중간지대는 회색분자로 여겨 양쪽에서 다 배척한다.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나 다름없다.

정치는 타협이다. 정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게 정치다. 우리는 오로지 적을 섬멸하려고만 한다. 적을 섬멸하는 것은 전쟁이다. 양진영이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60% 정도는 이미 양극화에 함몰돼 있다. 정치를 하려면 우선 양진영 중에 어느 한쪽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본선에서 캐스팅 보트는 중간지대 40% 사람들이 쥐고 있다. 이들은 양극화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독자세력을 형성하지도 못한다. 시대상황에 따라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 줄수 밖에 없다. 이들은 여론조사에 응답도 회피한다. 투표할때 기권도 많이 한다.

앙진영 중에 한 진영이 세불리 할때 중간지대의 저명한 인사를 영입하려 한다. 이때 정치신인들은 한결같이 중간지대 사람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중도 대통합을 주창한다.

극단적인 양진영에서는 색깔을 분명히 하라며 못마땅해 한다. 기대했던 양진영의 지지자들이 기회주의자라며 이탈한다.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후보등록도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 정치에도 수순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초반에 중도 대통합을 주창한 정치인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과거 이철승 후보가 대표적인 예라 할수 있다. 먼저 양진영의 지지를 얻어 후보가 되고 난 후에 중도 대통합을 주창해야 한다.

국민적 인기는 없어도 정치를 오래한 사람은 안다. 먼저 극단적인 양진영, 쉽게 말해 집토끼를 먼저 잡고 중간지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정치신인과 정치적 수순이 다르다. 수순을 잘못두면 바둑에서도 대마가 죽듯이 정치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

고건 총리가 낙마하고, 반기문 총장이 고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있다.

정치를 하려면 최소한 집토끼와 산토끼, 어느 토끼를 먼저 잡아야 하는지는 알고 시작해야 한다.

정치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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