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특검 출범 전 블랙리스트 수사 파급이 박근혜 대통령 바로 턱밑까지 치고 들어올지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시나브로 시작한 수사였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수첩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용복 특검보는 유진룡 전 장관과 문체부 직원들 진술, 그리고 압수수색 자료를 토대로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육문화 수석실을 완전히 훑었다.

그 결과 '한국공안통치의 주역'이자 '권력의 화신' 또는 '정치검사의 표본'으로 불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구속시켰다. 또 현직 장관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통령의 여자'로 불렸던 조윤선 전 장관도 '골인'시키며 사실상 장관직에서 해임시켰다.

블랙리스트 수사는 박 대통령과 삼성그룹 간 뇌물죄 의혹 관련 수사까지 순식간에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특검의 1월 전반부 수사를 언론은 블랙리스트 기사로 거의 도배했다.

 
사면초가에 몰린 ‘淇春대원군’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가면서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해 오던 김기춘(78ㆍ구속)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속살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1일 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특검 공소장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8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 전 실장은 “종북 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1월에는 김 전 실장이 비서관과 행정관들에게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의 형국이니 ‘전투 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 세력과 싸워야 한다”고 언급했고, 박 대통령 역시 2013년 9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 전 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 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발언이 공소장에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공소장에는 박준우(64)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 2014년 6월 정무수석을 그만두면서 후임자인 조윤선(51ㆍ구속)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블랙리스트 관련 업무를 인계한 사실도 명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은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이 결정되자 “저명 보수 문화인의 기고, 시민단체 활동으로 비판 여론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에게 하고, “다이빙벨 상영관의 전 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해 시민들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상영 후 이를 폄하하는 관람평을 달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했다.

한편 특검팀은 지난달 30일 김 전 장관을 비롯해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정부와 견해를 달리하는 문화 예술계 인사와 단체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한 혐의와 노태강 전 체육국장 등 문체부 국장 3명을 부당 인사 조처한 혐의 등이 적용됐다.

김 전 장관과 정 전 차관의 경우 지난해 12월 열린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위증한 혐의도 추가됐다. 두 사람은 “블랙리스트는 없고,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도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한 김 전 실장 역시 위증 혐의가 적용될 전망이다.

결국 '죽은 김영한 비망록‘이 산 김기춘 공직 50년의 민낯을 드러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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