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우리나라 원양 해운업의 시초로 전 세계 바다를 누벼온 ‘수출 한국’ 대표주자이던 한진해운이 창립 4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2일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를 폐지하기로 결정, 채권자 의견 조회 등 2주간의 항고 기간을 거쳐 오는 17일 파산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법원이 최종 파산을 선고하면 남은 자산을 매각한 뒤 매각금액을 채권자들에게 배분하는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항고 기간은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불과해 이미 한진해운에 대한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1977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했다. 이듬해 중동항로 개척, 1979년 북미 서안 항로와 83년 북미 동안항로 개설 등으로 해운업 역사를 써내려갔다. 현대상선보다 1년 늦게 뛰어들었지만, 1940년대에 설립된 ‘국내 1호 선사’ 대한상선(대한선주)을 88년에 인수해 유럽항로를 넘겨받으며 국내 1위 선사로 부상했다.

1992년에는 국적 선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미국 시애틀과 롱비치 등 주요 항만에 전용터미널을 세워 사세를 급속히 확장했다. 이어 1995년 거양해운과 97년 독일 디에스아르(DSR)-세나토 등 굴지의 선사들을 인수·합병하는 등 공격적으로 덩치를 키워 세계 7위의 강자로 성장했다.

2002년 11월 조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에는 셋째 아들인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을 맡았다. 하지만 해운업이 호황을 맞으며 순항하는듯 했으나 조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섰지만 글로벌 해운업 장기침체를 막기 역부족이었고 회사는 수천억원대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한진해운 경영권은 지난 2013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회생에 실패, 지난해 1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며 공식적으로 경영권을 포기했다.

이후 채권단과 한진그룹 측은 추가 자금 지원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채권단은 결국 8월 말 자율협약 종료를 선언하며 한진해운을 포기했다.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벌크선, LNG선 등 200여척 1000여만톤 선박으로 전세계 60여개의 정기항로와 부정기 항로를 운영하며 연간 1억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해운사로 인정받았던 곳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국적선사 1위, 글로벌 7위 한진해운은 정확히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법정관리 당시 1350여명에 달했던 육해상 직원들은 상당수 SM상선, 현대상선 등 국내 다른 해운사나 기타 업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약 55명의 인원이 한진해운에 남은 상태로 전해진다.

한편 한진해운은 회생담보권, 회생채권 등에 대한 시부인 결과 총 3조4054억원의 채무가 존재한다고 관리인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그간 미주 노선 영업망,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마련된 재원은 채무변제에 사용된다. 다만 전체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일부 투자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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