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첫 의견서를 제출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그런 일을 하리라 생각도 못했다고 했고, 논란이 된 국가기밀 유출 등에 대해서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월권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관심을 모았던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존 법률 대리인단이 제출한 답변서한으로 갈음한다고만 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지난 3일 '소추사유에 관한 피청구인(대통령)의 입장'이란 준비서면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 서면은 박 대통령이 인정하는 부분에 대한 대리인단의 의견을 담은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은 이 서면에 △비선조직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보호 의무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등 탄핵사유 5가지 유형 중 형사법 위반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면 부인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씨와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라는 헌재의 요구에 박 대통령은 "40여 년간 알고 지내왔다"며 "그간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줬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뢰해왔던 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최씨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다"며 "그녀가 여러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또 "여성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의상 등 세세한 일을 도와주고 시중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풍문을 귀띔해줬다"며 "일반 국민의 시각으로 연설문 작성시 표현방법 등에 관한 조언을 한 적은 있다"고 인정했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으로 2013년 2월 취임한 뒤 비서진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나 언어습관을 이해하지 못해 연설문이나 말씀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정호성 비서관에게 최씨의 의견을 들어 참고하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비서관이 일부 연설문 작성과정에서 초안을 최씨에게 보내 그녀의 의견을 참고해 국민이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일부 표현을 수정하는 식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은해 8월 비서실장과 비서진이 교체되고 비서진이 업무에 능숙해지면서 최씨 의견을 들어보라는 경우가 점차 줄었다"며 "연설문과 말씀자료는 형식적 비밀로 분류된 바 없고 공무상 비밀이라는 인식을 전혀 못했다"고 덧붙였다. 2013년 8월은 김기춘 전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시기다.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을 통해 "정 전 비서관에게 연설문, 말씀자료 외에 다른 자료를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며 개인의 이익에 관련된 자료나 정책에 관련된 자료를 최씨에게 보내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최씨의 의도대로 문체부 고위 공직자가 임명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추천을 받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합당하고 엄격한 절차를 거쳐 임명했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박 대통령 측은 KD코퍼레이션, 플레이그라운드 등 최씨와 관련된 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최씨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은 "2014년 10월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KD 관련 민원을 보고받고 11월 안종범 수석에게 '유망한 중소기업인데 외국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플레이그라운드에 대해서도 "유망한 중소기업인데 공익 차원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니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라"고 안 전 수석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로 하여금 펜싱팀을 창단하게 하고 더블루K에 매니지먼트를 맡기도록 강요했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박 대통령측은 "더블루K는 독일의 유명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의 한국 지사로, 실력 있는 업체이고 공익 사업에도 적극 기여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최씨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KT에 이동수씨와 신혜성씨를 채용하도록 강요한 의혹에 대해선 "모두 역량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호의적 소개를 부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의혹에 대해선 "대통령이 재단의 운영과 사업에 관여하거나 이익을 취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기업 회장들에게 국가 발전을 위해 문화·체육분야의 공익사업이나 투자에 적극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며 "출연 등 적극 지원하라고 요구한 사실은 없다"고 강제모금 의혹을 부정했다.

또 대통령이 최씨에게 두 재단이 잘 운영되는지 여부를 살펴봐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답변은 최씨가 지난달 16일 탄핵심판 사건 5회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관련 업무를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관련 언론자유 탄압에 대해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밀문건이 외부로 유출됐다면 국가적으로 큰 문제이기 때문에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고 밝혔다.

세월호참사 관련 생명권보호 의무 위반에 대해선 "대리인들이 상세한 내용의 준비서면을 제출한 바 있다"며 "그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고 추가 석명을 하지 않았다.

이날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어째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다”고 운을 뗀 뒤 “거침없이 달려왔던 특검이 청와대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염치도 법치도 내던져버린 박근혜 대통령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헌재 심리도 대통령 대리인의 노골적 지연 작전에 불필요하게 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제 거짓말도 식상하다" " 뻔뻔해도 유만부득이지..." "염병하네"등 분노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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